1930년대
아스팔트
걸을 량이면 아스팔트를 밟기로 한다. 서울 거리에서 흙을 밟을 맛이 무엇이랴.
아스팔트는 고무밑창보담 징 한 개 박지 않은 쇠가죽 그대로 사폿사폿 밟아야 쫀득쫀득 받치우는 맛을 알게 된다. 발은 차라리 타이어처럼 굴러간다. 발이 한사코 돌아다니자기에 나는 자꾸 끌리운다. 발이 있어서 나는 고독치 않다.
가로수 이파리마다 발발하기 물고기 같고 6월 초승 하늘 아래 밋밋한 고층건축들은 삼(衫)나무 냄새를 풍긴다. 나의 파나마는 새파랗듯 젊을 수밖에. 가견(家犬), 양산(洋傘), 단장(短杖) 그러한 것은 한아(閑雅)한 교양이 있어야 하기에 연애는 시간을 심히 낭비하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것들을 길들일 수 없다. 나는 심히 유창한 프롤레타리아트! 고무볼처럼 퐁퐁 튀기어지며 간다. 오후 4시 오피스의 피로가 나로 하여금 궤도 일체를 밟을 수 없게 한다. 장난감 기관차처럼 장난하고 싶고나. 풀포기가 없어도 종달새가 내려오지 않아도 좋은, 푹신하고 판판하고 만만한 나의 유목장 아스팔트! 흑인종은 파인애플을 통째로 쪼기어 새빨간 입술로 쪽쪽 들이킨다. 나는 아스팔트에서 조금 빗겨 들어서면 된다.
탁! 탁! 튀는 생맥주가 폭포처럼 황혼의 서울은 갑자기 팽창한다. 불을 켠다.
주석
파나마 파나마풀의 잎을 잘게 쪼개 짠 여름용 중절모자(파나마 모자).
가견(家犬)·양산(洋傘)·단장(短杖) 집에서 기르는 개, 양산, 짧은 지팡이. 한가한 멋과 교양의 상징으로 열거한 것들.
프롤레타리아트 무산계급·노동자. 여기서는 아무 거추장스러운 소유 없이 거리를 거침없이 걷는 자신을 가볍게 빗댄 말.
유목장 가축을 풀어 기르는 풀밭. 발 가는 대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아스팔트를 자신의 목장에 비유했다.
심상·해설
초여름 황혼의 서울, 파나마 모자를 쓴 화자가 거추장스러운 것 없이 고무공처럼 가볍게 아스팔트를 밟으며 도시의 활기와 해방감을 만끽하는 경쾌한 거리 풍경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