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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1920년대

망각

박용철 · 1920년대
오오 아름다운 망각(忘却) 너곳 아니드면 하느님도 별수없는 소학생(小學生) 그릇친 습자지(習字紙)는 고대 부벼 휴지통에 버려야 하는것을 새벽마다 물장수의 삐걱거리는 지게는 물마른 물독들의 기우린 귀를 찰찰 넘쳐준다 한물림 한물림 조심스레 아기자기한 태엽을 감아주는 손은 뉘냐 참말 보드라운 칠판닥기 네가 지우고간 자욱을 더듬어읽는 그 기인 손가락가진 맹인(盲人)의 기이한 미소(微笑) 밤낮 스타─트만 고처하는 단거리연습 아─ 인생(人生)은 질거웁다

주석

망각(忘却) 잊어버림. 여기서는 지난 일을 깨끗이 지워 새로 시작하게 해 주는 힘으로 예찬된다.

습자지(習字紙) 글씨 쓰기를 연습하는 종이. 잘못 쓰면 버리고 다시 쓰는 데서 망각에 빗댄다.

칠판닥기 '칠판 닦이', 칠판지우개. 쓴 것을 지워 없애는 도구로 망각을 비유한다.

한물림 지게로 물을 한 번 길어 나르는 분량, 한 차례. '한 물림 한 물림'은 차례차례 조금씩이라는 뜻.

심상·해설

잘못 쓴 습자지를 비벼 버리고 칠판을 지우듯, 망각이 지난 잘못을 지우고 새벽 물처럼 삶을 다시 채워 주는 덕분에 출발선에 다시 서는 인생의 즐거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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