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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죽임
1920년대

시계를 죽임

정지용 · 1920년대
한밤에 벽시계(壁時計)는 불길(不吉)한 탁목조(啄木鳥)! 나의 뇌수(腦髓)를 미신바늘처럼 쫏다. 일어나 쫑알거리는 「시간(時間)」을 비틀어 죽이다. 잔인(殘忍)한 손아귀에 감기는 간열핀 목아지여! 오늘은 열시간 일하였노라. 피로(疲勞)한 이지(理智)는 그대로 치차(齒車)를 돌리다. 나의 생활(生活)을 일절 분노(憤怒)를 잊었노라. 유리(琉璃)안에 설레는 검은 곰 인양 하품하다. 꿈과 같은 이야기는 꿈에도 아니 하랸다. 필요(必要)하다면 눈물도 제조(製造)할뿐! 어쨋던 정각에 꼭 수면(睡眠)하는것이 고상(高尙)한 무표정(無表情)이오 한취미(趣味)로 하노라! 명일(明日)! (일자(日字)가 아니어도 좋은 영원(永遠)한 혼례(婚禮)!) 소리없이 옴겨가는 나의 백금(白金)체펠린의 유유(悠悠)한 야간항로(夜間航路)여!

주석

탁목조(啄木鳥) 딱따구리. 나무를 쪼듯 시계 초침 소리가 머리를 쪼아대는 느낌을 비유한 것.

치차(齒車) 톱니바퀴. 기계처럼 반복되는 노동과 이성의 작동을 가리킴.

체펠린 독일의 비행선 제펠린(Zeppelin). 밤하늘을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가는 잠 또는 죽음 같은 안식을 비유.

심상·해설

한밤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딱따구리처럼 머리를 쪼아대는 가운데, 노동에 지친 도시인이 시간을 비틀어 죽이듯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차갑고 기계적인 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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