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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930년대

시

김상용 · 1930년대
골짜기를 혼자 거닐 때……. 별안간 무슨 소리고 내고 싶은 충동이 난다. 입술을 새 주둥아리처럼 한데 모아야겠다. 새 주둥아리로 압축되었던 '김'이 질주한다. 그 소리가 (분명 소리리라) 건너편 절벽에서 반발한다. 곳곳에 작은 작열의 불꽃. 이때 나의 새 발견이 있다 하고 가슴이 외쳐준다. 경이다. '시(詩)'란 작열이다. '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 해서 죄는 안 된다. '돌'이 갈려 옥이 될 수 없다. 예서 더 진부한 상식이 있겠는가. 능금꽃은 능금나무 가지에 피고……. '시의 생성'은 아메바적 분열 작용에만 유래한다. '시'와 '시인'은 같은 조각이다. 파란 시의, 시인의 얼굴빛의, 분홍색의 허위성의 진정을 알아야 한다. '시는 나다' 할 수 있는 시인이 '피로 썼다' 할 수도 있다. '달이 청첩을 보냈다' 이 환자를 몽유병환자로 진단한 명의의 과학에 오류가 없다. 그러나 이때 '시'의 산욕은 어수선하였다. 진리는 달이라 하나, 시는 허무의 아들로 자처한다. 시에서 모순을 발견치 못하는 건 백치다. 그러나 시의 모순을 사랑하지 못하는 건 백치를 부러워해야 할 속한이다. 시커먼 바위에서 애정을 느낄 수 있을까? 있다. 어떻게? 시커먼 바위에서 애정을 느낄 수 없으니까 느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커먼 바위에서 애정을 느낄 수 있으니까 느낄 수 있다. 이때 위대한 시인은 월계관을 쓰고 동구 앞에 서 있게 되는 게다. 쥐 둥지 하나의 파괴를 로마 성의 함락보다 서러워한 천치가 있었다. 이날, 세상은 도량형의 이상을 경고한다. 아유(阿諛)할 때 시는 죽는다. 진흙에서 연꽃이 핀다. 이 점에서 자연은 시인이다. 시를 직업으로는 못한다. 정절을 직업으로 할 수 있을까. 시가 거울일 때, 그는 고독의 단 젖을 빤다.

주석

산욕 아이를 낳는 일, 또는 그로 인한 몸의 상태(産褥). 여기서는 시가 태어나는 산고(産苦)에 빗댄 표현이다.

속한 속물, 식견 없이 세속에 물든 사람(俗漢).

아유(阿諛)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림, 곧 아첨을 뜻하는 한자어. 시가 아첨하는 순간 죽는다고 본다.

도량형 길이·부피·무게를 재는 단위와 표준(度量衡). '쥐 둥지를 로마 함락보다 슬퍼함'을 두고 세상이 가치의 척도가 어긋났다고 경고한다는 뜻이다.

심상·해설

골짜기에서 절벽에 부딪혀 되울리는 외침처럼, 시란 무엇인가를 아포리즘으로 더듬어 가며 시와 시인, 모순과 고독에 대한 차고 날카로운 사색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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