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슬픈 인상화
수박냄새 품어 오는
첫여름의 저녁 때...
먼 해안 쪽
길옆 나무에 늘어 슨
전등. 전등.
헤엄쳐 나온 듯이 깜박어리고 빛나노나.
침울하게 울려 오는
축항의 기적소리... 기적소리...
이국정조로 퍼덕이는
세관의 깃발. 깃발.
세멘트 깐 인도측으로 사폿사폿 옮기는
하이얀 양장의 점경!
그는 흘러가는 실심한 풍경이여니...
부질없이 오량쥬 껍질 씹는 시름...
아아, 애시리, 황
그대는 상해로 가는 구료...
주석
인상화(印象畵) 사물에서 받은 순간의 인상을 빛과 색으로 그려 낸 그림. 항구의 저녁 정경을 인상파 그림처럼 묘사한 데서 붙은 제목이다.
축항(築港) 배가 드나들도록 쌓아 만든 항구, 또는 항구를 쌓는 일. 여기서는 항구를 가리킨다.
점경(點景) 풍경화에서 정취를 돋우려고 작게 곁들여 그려 넣는 인물이나 동물. 풍경 속의 작은 인물상을 뜻한다.
애시리, 황 떠나가는 여인을 부르는 이름. '애시리'는 외국식 이름(Ashley 등), '황'은 성씨로 보며, 상하이로 떠나는 이국적 여인을 가리킨다.
오량쥬 오렌지(orange). 이국적 정취를 더하는 과일로, 그 껍질을 부질없이 씹는 것은 떠나보내는 허전한 시름을 나타낸다.
심상·해설
수박 냄새 풍기는 첫여름 항구의 저녁, 깜박이는 전등과 침울한 기적 소리, 세관 깃발이 퍼덕이는 부둣가를 하얀 양장의 여인이 상하이로 떠나가는, 이국적이고 쓸쓸한 인상이 한 폭 그림처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