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해 저문 나라에
1920년대

해 저문 나라에

홍사용 · 1920년대
해 저문 나라에 그이를 찾아서 해 저문 나라에, 커다란 거리에, 나아갔었더니 지나가는 나그네의 꼬임수에 흔하게 싸게 파는 궂은 설움을 멋없이 이렇게 사 가졌노라. 옛 느낌을 소스라쳐 애 마르는 한숨 모든 일을 탓하여 무엇하리요, 때묻은 치맛자락 흐느적거리고 빛 바래인 그림자 무너진 봄꿈, 미치인 지어미의 노래에 섞어서 그 날이 마음 아픈 오월 열하루. 봄아 말없는 봄아, 가는 봄은 기별도 없이 꽃 피던 그 봄은 기별도 없이, 진달래꽃 피거든 오라더니만, 봄이나 사랑이나 마음이나 사람과 함께 서로 달라서, 이 몸이 사랑과 가기도 전에 돌아가는 그 봄은 기별도 없이 진실과 눈물은 누구의 말이던고, 시방도 나는 이렇게 섧거든, 그적에 애끊이던 그이의 눈물은 얼마나 붉었으료, 하염없이 돌아가던 언덕, 긴 한숨 부리던 머나먼 벌판, 눈물에 젖어서 잡풀만 싹이 터 우거졌는데,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오고 가는 산새 가슴이 아프다 "뻐뻑꾹" 그이가 깨끗하게 닦아주고 가던 내 맘의 어루쇠[鐘]는 녹이 슬어서 기꺼우나 슬프나 비추이던 얼굴, 다시는 그림자도 볼 수 없으니, 아 -­ 그 날은 병 들은 나의 살림, 마음 아픈 오월 열하루, 나는 이제껏 그이를 찾아서 어두운 이 나라에 헤매이노라.

주석

어루쇠[鐘] 쇠붙이를 갈고 닦아 만든 옛 거울. 본문 한자 표기는 거울 감(鑑)의 뜻으로, 마음을 비추는 거울을 가리킨다.

오월 열하루 음력 5월 11일. 화자에게 이별·상실과 얽힌 마음 아픈 날로 거듭 강조된다.

지어미 '아내·여인'을 뜻하는 옛말. 여기서는 넋 나간 듯 노래하는 미친 여인을 이른다.

심상·해설

해 저문 거리에서 떠난 이를 찾아 헤매며, 녹슨 거울과 우는 산새, 무너진 봄꿈을 통해 오월 열하루의 깊은 이별의 슬픔을 어둡게 그려낸다.

홍사용의 다른 작품

비슷한 심상의 다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