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비로봉 (4장)
담장이
물 들고
다람쥐 꼬리
숱이 짙다.
산맥 우의
가을길-
이마바르히
해도 향그롭어
자팽이
자진 마짐
흰들이
우놋다.
백화 홀홀
허울 벗고,
꽃 옆에 자고
이는 구름,
바람에
아시우다.
주석
비로봉(毗盧峰) 금강산의 최고봉. 정지용이 금강산을 오르며 본 가을 풍경을 그린 시이다.
백화(白樺) 자작나무. 흰 껍질이 얇게 벗겨지는 모습을 '허울 벗고'로 표현했다.
이마바르히 이마받이로. 이마를 마주 대듯 산길에서 해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모양.
자팽이 지팡이의 방언. '자진 마짐'은 지팡이를 잦게(자주) 짚는다는 뜻이다.
아시우다 빼앗기다, 가시다(사라지다). 꽃 옆에 일던 구름이 바람에 흩어져 사라짐을 뜻한다.
심상·해설
단풍 든 담쟁이와 숱 짙은 다람쥐 꼬리, 자작나무가 껍질을 벗는 금강산 능선의 가을 길을, 지팡이 소리와 향기로운 햇살 속에서 거니는 듯한 청량함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