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발열
처마 끝에 서린 연기 따러
포도순이 기여 나가는 밤, 소리 없이,
가물음 땅에 스며든 더운 김이
등에 서리나니,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어 오르노나.
가쁜 숨결을 드내쉬노니, 박나비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 입술을 붙이고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다신교도와도 같이.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아득한 하늘에는
별들이 참벌 날으듯 하여라.
주석
가물음 가뭄.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른 상태.
박나비 박나방. 박꽃에 모여드는 밤나방의 한 종류. 가쁘게 파닥이는 숨결을 빗댄다.
주사(朱沙) 붉은 빛깔의 광물성 약재. 아픈 아이의 이마 등에 약으로 찍은 자리를 가리킨다.
다신교도(多神敎徒) 여러 신을 섬기는 사람. 무엇에든 빌고 매달리듯 중얼거리는 절박한 심정을 빗댄다.
애자지게 애가 타게, 몹시 안타깝게.
참벌 꿀벌.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모양을 별빛에 견준다.
심상·해설
가뭄 든 여름밤, 열에 달아오른 아이가 박나방처럼 가쁘게 숨 쉬며 보채고, 불도 약도 없이 아득한 하늘의 별만 참벌처럼 날리는 부모의 애끓는 정경이 사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