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950년대
간 아내에게
지나간 20여년 하루같이 살아오다
가는곳 다른양 허황히도 나누이네
생심채 꿈만 같아야 어리둥절 합니다.
지난날 돌아보니 뉘우침이 반넘언데
슬픔은 일다가도 춤해질 때 있건마는
뉘우침은 고집스레도 처질줄만 압니다.
철모른 어려부터 나나지내 그랬든지
남다른 그 무엇을 감감이도 모를러니
오늘엔 이 어인 일로 이대도록 슬플가.
연락도 없는 일이 갖은 추억 자아내어
되붙는 불같이도 와락이는 그 슬픔야
쇠아닌 마음이어니 아니녹고 어이리.
몸굳이 가려거던 기억마저 실어가오
애꿎인 몸만은 뿌리치듯 가면서도
무삼일 젖은 옷같이 기억만은 감기노.
목소리 가운데에 괴괴함이 떨어지어
귀만은 시끄러나 마음홀로 호젓코나
눈감고 있던 날 음성 들어볼가 합니다.
고요한 불빛나 감은 눈엔 흔들린다
꿈도 아니지만 생시 또는 채는 아니
희미한 그 길이나마 걸어보면 어떠료.
—「韓國詩人全集[한국시인전집]」, 1955
주석
생심채 살아생전에. '생심껏', '생시'와 통하는 옛말투로, 살아 있는 동안을 이른다.
춤해질 '잠잠해지다·가라앉다'의 옛말. 슬픔이 누그러지는 것을 가리킨다.
나나지내 '나날이 지내며'를 줄여 적은 옛 표기.
무삼일 '무슨 일로'의 옛말.
괴괴함 쓸쓸할 만큼 아주 고요하고 적막함.
채는 '그렇다고 (~인) 채로는'의 뜻. 완전히 그러한 상태는 아님을 이른다.
어떠료 '어떠하리·어떠할까'의 옛말 어미.
심상·해설
이십여 년을 함께한 아내를 잃은 뒤, 떠나간 음성과 기억이 젖은 옷처럼 몸에 감겨 떨어지지 않는다. 감은 눈 안에서 흔들리는 고요한 불빛을 따라 그 희미한 길이라도 걸어 보고 싶은 사별의 슬픔이 사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