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조소
두터운 이불을,
포개 덥허도,
아즉 칩은,
이 겨울밤에,
언길을, 밟고 가는
장돌림, 보짐장사,
재넘어 마을,
저자보려,
중얼거리며
헐덕이는 숨결이,
아-
나를 보고, 나를
비웃으며 지난다.
-『둔찬(遁竄)의 선물』 가온데서-
주석
장돌림 여러 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수, 곧 장돌뱅이. 봇짐을 지고 장에서 장으로 떠도는 행상을 가리킨다.
재넘어 마을, 저자보려 '재'는 산고개, '저자'는 시장이다. 산고개 너머 마을의 장을 보러 가려고 추운 밤길을 걷는다는 뜻이다.
둔찬(遁竄)의 선물 이상화의 미발표 시 묶음 이름. '둔찬'은 세상을 피해 달아나 숨음을 뜻한다.
심상·해설
두꺼운 이불 속에서도 추운 겨울밤, 언 길을 밟으며 장을 보러 산고개를 넘는 봇짐장수의 헐떡이는 숨결이 들린다. 따뜻한 방 안의 화자를 비웃으며 지나가는 그 모습 앞에서 부끄러운 자기 성찰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