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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
1920년대

단조

이상화 · 1920년대
비 오는 밤 가라앉은 하늘이 꿈꾸듯 어두워라. 나뭇잎 마다에서 젖은 속살거림이 끊이지 않을 때일러라. 마음의 막다른 낡은 띳집에선 뉜지 모르나 까닭도 없어라. 눈물 흘리는 적(笛) 소리만 가없는 마음으로 고요히 방울 지우다. 저-편에 늘어 섰는 백양(白楊)나무 숲의 살찐 그림자는 잊어버린 기억(記憶)이 떠돎과 같이 침울(沈鬱)-몽롱(曚朧)한 「캔버스」 위에서 흐느끼다. 아! 야릇도 하여라. 야밤의 고요함은 내 가슴에도 깃들이다. 벙어리 입으로 떠도는 침묵(沈默)은 추억(追憶)의 녹 긴 창(窓)을 죽일 숨 쉬며 엿보아라. 아! 자취도 없이 나를 껴안는 이 밤의 호젓함이 서러워라. 비 오는 밤 가라앉은 영혼(靈魂)이 죽은 듯 고요도 하여라. 내 생각의 거미줄 끝마다에서도 작은 속살거림은 줄곧 쉬지 않아라. —『벙어리 노래에서』—

주석

단조(單調) 단조로움. 변화 없이 가라앉은 가락이라는 뜻으로, 비 오는 밤의 적막하고 우울한 정조를 제목에 담았다.

띳집 띠풀로 지붕을 인 초라한 집. 여기서는 막다른 마음의 한구석을 비유한다.

적(笛) 피리. '눈물 흘리는 적 소리'는 빗소리를 구슬픈 피리 소리에 빗댄 표현이다.

백양(白楊)나무 사시나무 또는 미루나무 종류. 잎이 바람에 잘 흔들려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캔버스(canvas) 유화를 그리는 천. 어두운 밤 풍경을 한 폭의 그림에 비유한 표현이다.

심상·해설

가라앉은 하늘 아래 빗방울이 피리 소리처럼 떨어지는 밤, 백양나무 숲 그림자가 침울한 화폭 위에 흐느낀다. 자취 없이 껴안는 밤의 호젓함과 끝없는 속살거림이 서럽게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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