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독백
사랑하는 벗이여,
슬픈 빛 감추기란 매맞기보다도 어렵소이다.
온갖 설움을 꿀꺽꿀꺽 참아 넘기고
낮에는 히히 허허 실없은 체하건만
쥐죽은듯한 깊은 밤은 사나이의 통곡장(痛哭場)이외다.
사랑하는 벗이여,
분(憤)한 일 참기란 생목숨 끊기보다도 힘드오이다.
적(積)덩이처럼 치밀어 오르는 가슴의 불길을
분화구(噴火口)와 같이 하늘로 뿜어 내지도 못하고
청춘(靑春)의 염통을 「알콜」에나 절여 담그려는
이놈의 등어리에 채찍이라도 얹어주소서.
사랑하는 그대여,
조상에게 그저 받은 뼈와 살이어늘
남은 것이라고는 벌거벗은 알몸 뿐이어늘
그것이 아까워 놈들 앞에 절하고 무릎을 꿇는 나는 「샤일록」보다도 더 인색(吝嗇)한 놈이외다.
쌀 삶은 것 먹을줄 아니 그 이름이 사람이외다,
주석
통곡장(痛哭場) 소리 내어 크게 우는 자리. 낮에는 웃는 체하던 사내가 밤이 되어서야 마음껏 우는 곳이라는 뜻이다.
적(積)덩이 뱃속에 뭉쳐 생긴 덩어리(적·積). 여기서는 가슴속에 단단히 맺혀 치밀어 오르는 응어리를 가리킨다.
샤일록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인색하고 냉혹한 고리대금업자. 지독한 구두쇠의 대명사로 쓰인다.
쌀 삶은 것 먹을 줄 아니 그 이름이 사람이외다 굴욕을 견디며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자신을 자조하는 말. 사람 구실은 못 하면서 밥만 축낸다는 뜻의 반어적 표현이다.
심상·해설
낮에는 실없이 웃다가 깊은 밤이면 홀로 통곡하며, 굴욕을 견디는 자신을 채찍질하고 싶어 하는 식민지 청년의 분노와 자기 환멸이 어두운 독백으로 토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