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방문 거절
아 내 맘의 잠근 문을, 두드리는 이여, 네가 누구냐? 이 어둔 밤에
『영예(榮譽)!』
방둑에 살자는 영예(榮譽)여! 너거든 오지 말아라
나는 네게서 오직 가엾은 선 웃음을 볼 뿐이로라.
아 벙어리 입으로 문만 두드리는 이여, 너는 누구냐? 이 어둔 밤에
『생명(生命)!』
도깨비 노래하자는 목숨아. 너는 돌아가거라,
네가 주는 것 다만 내 가슴을 썩힌 곰팡 뿐일러라.
아 아직도 문을 두드리는 이여- 이 어둔 밤에
『애련(愛戀)!』
불놀이하자는 사랑아. 네거든 와서 낚아 가거라
내겐 너 줄, 오직 네 병(病)든 몸속에, 누운 넋 뿐이로라.
—「욕념(慾念)」 가운데서―
주석
영예(榮譽) 세상의 명예와 영광. 화자가 어두운 밤 자신을 찾아오는 헛된 가치로 의인화하였다.
애련(愛戀) 사랑하고 그리워함. 여기서는 '불놀이' 같은 허망한 사랑으로 그려진다.
선 웃음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은 어색하고 공허한 웃음을 뜻한다.
방둑에 살자는 둑 위에 위태롭게 깃들이듯, 영예가 덧없고 불안정함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욕념(慾念) 이 시가 실린 연작의 제목으로 '욕망·욕심의 마음'을 뜻한다.
심상·해설
어두운 밤 굳게 잠근 마음의 문을 영예와 생명과 사랑이 차례로 두드리지만, 화자는 가슴에 썩은 곰팡이와 병든 넋만 남았다며 모두 돌려보낸다. 짙은 환멸과 절망이 문틈으로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