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나의 침실로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모꼬지에, 다니노라 피곤(疲困)하여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眞珠)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도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둔 침실(寢室)로 가자, 침실(寢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위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맘의 촛(燭)불을 봐라,
양(羊)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窒息)이 되어, 얄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림자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寢室) 열 이도 없느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피란 피― 가슴의 샘이, 말라버린 듯, 마음과 목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끌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돈나」― 내 침실(寢室)이 부활(復活)의 동굴(洞窟)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뒹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歲月) 모르는 나의 침실(寢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비음(緋音) 가운데서』―
주석
마돈나(Madonna) 이탈리아어로 '나의 귀부인'. 본래 성모 마리아를 부르는 말이나, 여기서는 시인이 부르는 연인이자 이상향의 여인을 가리킨다.
수밀도(水蜜桃) 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단맛이 강한 복숭아. 여인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비유한다.
부활(復活)의 동굴(洞窟) 예수가 부활한 무덤(동굴)에서 온 이미지. 침실을 죽음을 넘어선 새 생명과 영원의 공간으로 비유한다.
비음(緋音) 이상화가 자신의 시편을 묶어 부른 제목. '붉은 소리'라는 뜻으로 정열과 죽음의 정서를 담는다.
심상·해설
먼동이 트기 전 어둠 속에서 연인을 애타게 부르는 격정의 밤. 꺼지려는 촛불과 첫닭 울음 사이로, 죽음과 부활이 한데 얽힌 침실로의 도피가 관능적이고 신비롭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