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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1930년대

황혼

오장환 · 1930년대
직업소개에는 실업자들이 일터와 같이 출근하였다. 아무 일도 안하면 일할 때보다는 야위어진다. 검푸른 황혼은 언덕 아래로 깔리어오고 가로수와 절망과 같은 나의 기─ㄴ 그림자는 군집의 대하에 짓밟히었다. 바보와 같이 거물어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나의 키보다 얕은 가로수에 기대어 섰다. 병든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근육이 풀릴 때 향수는 실마리처럼 풀려나온다. 나는 젊음의 자랑과 희망을, 나의 무거운 절망의 그림자와 함께, 뭇사람의 웃음과 발길에 채이고 밟히며 스미어 오는 황혼에 맡겨버린다. 제 집을 향하는 많은 군중들은 시끄러이 떠들며, 부산─히 어둠 속으로 흩어져버리고. 나는 공복의 가는 눈을 떠, 희미한 노등을 본다. 띄엄띄엄 서 있는 포도 위에 잎새 없는 가로수도 나와 같이 공허하고나. 고향이여! 황혼의 저자에서 나는 아리따운 너의 기억을 찾아 나의 마음을 전서구와 같이 날려보낸다. 정든 고샅. 썩은 울타리. 늙은 아베의 하─얀 상투에는 몇 나절의 때묻은 회상이 맺혀 있는가. 우거진 송림 속으로 곱게 보이는 고향이여! 병든 학이었다. 너는 날마다 야위어가는……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가고, 나는 병든 사나이. 야윈 손을 들어 오랫동안 타태와, 무기력을 극진히 어루만졌다. 어두워지는 황혼 속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보이지 않는 황혼 속에서, 나는 힘없는 분노와 절망을 묻어버린다.

주석

대하(大河) 큰 강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의 거대한 흐름을 비유한다.

노등(路燈) 길가의 등불, 곧 가로등을 이르는 말.

포도(鋪道) 돌이나 콘크리트로 포장한 길, 보도를 뜻한다.

저자 시장, 사람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던 거리를 이르는 말.

전서구(傳書鳩) 편지를 전하도록 길들인 비둘기로, 멀리 마음을 실어 보내는 매개로 쓰였다.

고샅 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

아베 아버지를 이르는 사투리.

타태(惰怠) 게으르고 나태함을 뜻하는 한자어.

심상·해설

일자리를 잃고 황혼의 거리에 긴 그림자를 끌며 군중에게 짓밟히는 병든 사내가, 멀리 솔숲에 잠긴 고향을 전서구처럼 그리워하며 분노와 절망을 어둠 속에 묻는 쓸쓸한 도시의 저녁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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