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해항도
폐선처럼 기울어진 고물상옥에서는 늙은 선원이 추억을 매매하였다. 우중중─한 가로수와 목이 굵은 당견이 있는 충충한 해항의 거리는 지저분한 크레용의 그림처럼, 끝이 무디고. 시꺼먼 바다에는 여러 바다를 거쳐온 화물선이 정박하였다.
값싼 반지요 골통같이 굵다란 파이프. 바다 바람을 쏘여 얼굴이 검푸러진 늙은 선원은 곧─잘 뱀을 놀린다. 한참 싸울 때에는 저 파이프로도 무기를 삼아왔다. 그러게 모자를 쓰지 않는 항시의 청년은 늙은 선원을 요지경처럼 싸고 두른다.
나폴리와 아든과 싱가포르. 늙은 선원은 항해표와 같은 기억을 더듬어본다. 해항의 가지가지 백색, 청색 작은 신호와, 영사관, 조계의 각가지 깃발을. 그리고 제 나라 말보다는 남의 나라 말에 능통하는 세관의 젊은 관리를. 바람에 날리는 흰 깃발처럼 나폴리. 아든. 싱가포르. 그 항구 그 바―의 계집은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망명한 귀족에 어울려 풍성한 도박. 컴컴한 골목 뒤에선 눈자위가 시푸른 청인이 괴춤을 훔칫거리면 길 밖으로 달리어간다. 홍등녀의 교소, 간들어지기야. 생명수! 생명수! 과연 너는 아편을 가졌다. 항시의 청년들은 연기를 한숨처럼 품으며 억세인 손을 들어 타락을 스스로히 술처럼 마신다.
영양이 생선가시처럼 달갑지 않는 해항의 밤이다. 늙은이야! 너도 수부이냐? 나도 선원이다. 자─한 잔, 한 잔, 배에 있으면 육지가 그립고, 뭍에선 바다가 그립다. 몹시도 컴컴하고 질척거리는 해항의 밤이다. 점점 깊은 숲속에 올빼미의 눈처럼 광채가 생하여 온다.
주석
당견(唐犬) 중국에서 들여온 개를 이르던 말.
항시(港市) 항구가 있는 도시, 항구 도시를 뜻한다.
아든(Aden) 아라비아반도 남단 예멘의 항구 도시 아덴으로, 동서 해상 무역의 요충지였다.
조계(租界) 개항장에서 외국인이 자유로이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리던 구역.
청인(淸人) 청나라 사람, 곧 중국인을 이르던 말.
홍등녀(紅燈女) 붉은 등을 내건 유곽의 여인, 곧 매춘부를 가리킨다.
교소(嬌笑) 아양 부리며 짓는 고운 웃음.
수부(水夫) 배에서 일하는 하급 선원, 뱃사람을 뜻한다.
생명수(生命水) 본래 영원한 생명을 주는 물이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환각에 빠지게 하는 아편을 반어적으로 일컫는다.
심상·해설
세계의 항구를 떠돌다 늙은 선원이 추억을 파는 어둑한 부둣가, 아편과 도박과 홍등이 번지는 이국적이고 퇴폐적인 항구 도시의 밤이 짙은 안개처럼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