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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920년대

밤

박용철 · 1920년대
마음아 너는 더 어질어 지렴아 너는 다만 헛되이…………… 아─ 진실로 헛되지 아니하냐. 남국의 어리석은 풀잎은 소김수많은 겨을날 하로햇빛에 고개를 들거니. 가믄 하날에 한조각 뜬구름을 바랐고 팔을 벌려 볼타오르는 나무가지같이. 오─ 밤길의 이상한 나그네야 산기슭 외딴집의 그물어가는 촛불로 네 히망조차 헛되이 날뛰려느냐 아─ 그 현명의 노끈으로 그 히망의 목을 잘라. 거르라 거르라 무거운 짐 곤한다리로 거르라 거르라 가도 갈길없는 너의길을 거르라 거르라 불꺼진숫을 가슴에안아 새벽 돌아옴없는밤을 거르라 거르라 거르라.

주석

소김수 '속임수'의 옛 표기. 거짓으로 속이는 꾀.

그물어가는 '그물다(불이 사위어 꺼져 가다)'에서 온 말. 촛불이 점점 사그라져 간다는 뜻.

현명의 노끈으로 희망의 목을 잘라 헛된 희망에 매달리지 말고 현명함으로 그 희망을 끊어 버리라는 역설적 표현.

심상·해설

겨울 햇빛에 속아 고개 드는 풀잎처럼 헛된 희망을 끊으라 다짐하며, 사위어 가는 촛불과 불 꺼진 숯을 가슴에 안고 새벽 없는 밤길을 끝없이 걸어가는 고독한 행로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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