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해도에 대하여
산봉우리들의 나직한 틈과 틈을 새어 남빛 잔으로 흘러들어오는 어둠의 조수. 사람들은 마치 지난밤 끝나지 아니한 약속의 계속인 것처럼 그 칠흑의 술잔을 들이켠다. 그러면 해는 할 일 없이 그의 희망을 던져버리고 그만 산모롱이로 돌아선다.
고양이는 산기슭에서 어둠을 입고 쪼그리고 앉아서 밀회를 기다리나 보다. 우리들이 버리고 온 행복처럼...... 석간신문의 대영제국의 지도 위를 도마뱀처럼 기어가는 별들의 그림자의 발자국들. '미스터.뽈드윈'의 연설은 암만해도 빛나지 않는 전혀 가엾은 황혼이다.
집 이층집 강 웃는 얼굴 교통순사의 모자 그대와의 약속...... 무엇이고 차별할 줄 모르는 무지한 검은 액체의 범람 속에 녹여 버리려는 이 목적이 없는 실험실 속에서 나의 작은 탐험선인 지구가 갑자기 그 항해를 잊어버린다면 나는 대체 어느 구석에서 나의 해도를 편단 말인가?
주석
조수 달의 인력으로 밀려들고 빠지는 바닷물(밀물·썰물). 여기서는 산틈으로 밀려드는 어둠을 밀물에 빗댔다.
미스터 뽈드윈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 1920~30년대 영국의 수상으로, 당대 정치를 상징한다. '빛나지 않는 황혼'으로 묘사해 시대를 풍자한다.
해도 바다의 항로를 그린 지도(海圖). 지구가 항해를 잊으면 어디서 항로 지도를 펴느냐는 물음으로, 방향 잃은 시대에 대한 불안을 드러낸다.
심상·해설
산틈으로 어둠이 밀물처럼 차오르는 황혼, 사람들이 칠흑의 술잔을 들이켜는 가운데 지구를 작은 탐험선에 빗대며 방향 잃은 시대의 막막함을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