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길
어두운 골목길을
바람처럼 더듬어 갈 양이면
꽃다발 대신 가슴에 지닌 시름이
고개를 든다
뒷간과 부엌과 방과 쓰레기통이
형제마냥 같이 있는
골목 골목을 벗어나면
바람이 옷자락을 물어뜯는 거리
숨도 죽은 밤거리
저 쪽 어둠 속에
큰 짐승의 눈깔처럼
깜빡이는 등불 등불…
등불이 켜진 곳마다
길은 있는데 큰 길도 있는데
길은 있어도 길은 없다
별을 보면 어금니가 저리고
달을 보면 억새밭처럼 서걱이는 가슴
어머니! 나의 갈 길은
어느 대에 있나이까?
주석
양이면 '~ㄹ 양이면'은 '~할 것 같으면, ~하려고 하면'의 뜻을 지닌 옛 표현.
뒷간 재래식 변소, 화장실.
어느 대 '어느 데', 곧 '어느 곳'을 뜻하는 옛 표기.
심상·해설
변소와 쓰레기통이 뒤섞인 어두운 골목을 더듬어 나와도 짐승 눈처럼 깜빡이는 등불뿐, 길은 있어도 갈 길이 없어 어머니를 부르는 막막한 밤거리의 절망이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