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땅거미 질 때
해 진 뒤라 문(門) 지치고 빗장을 굳게 질러
뉘 와 불러도 열지 말자 하였더니
닫히었던 어린 마음 틈같이 벌더니만
지킨 듯 그의 생각 어느 결 와락 밀어
가뭇없던 모습 숨결같이 가까우매
즐거운 괴로움 온몸에 숨이 인다.
식은 재 되붙듯이 잊힌 시름 다시 깨니
몸 굳이 고달퍼도 마음만은 갈피 몰라
나비 쫓은 밝은 데요 벌레 따른 어둔
데며
달에 홀린 바닷가요 소리에 끌린 골짝
이나
허튼말 뉘 믿으리 죽은 새 나래 친단……
불사조(不死鳥) 본 제 없어 환영(幻影) 고이 묻으리라.
―「문장(文章)」, 1939. 9
주석
불사조(不死鳥) 죽지 않고 되살아난다는 전설의 새 피닉스. 여기서는 이미 끝난 사랑이 되살아나리라는 헛된 기대를 가리키며, 시인은 그 환영을 묻어 버리겠다고 한다.
문장(文章) 1939년 창간된 문예지 '문장'. 이 시의 발표 지면이다.
가뭇없다 보이던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찾을 길 없다는 뜻의 옛말.
심상·해설
문을 걸어 잠그고 마음을 닫았건만 땅거미가 지자 잊은 줄 알았던 그리움이 숨결처럼 되살아난다. 다시 살아날 리 없는 사랑을 불사조의 헛된 환영으로 묻으려는 체념이 어슴푸레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