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바람은 베일 수 없듯이
바람은 베일 수 없듯이
물이면 끊을 수 없듯이
한 나라 한 겨레인 다음
좌우(左右)를 가를 수 있으랴
남북(南北)을 헤칠 수 있으랴
백두 한라 삼천리(白頭 漢拏 三千里)는 옛말이온
생각만 해도 피 끓고 숨 끊기리
라면
양단(兩斷)된 그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그 어인 놀라운 운명(運命)의 작희(作戱)이랴
흡반(吸盤) 돋은 팔초어(八稍魚)에 감긴 듯이
잡히면 헤어날 길 없는 그 불행(不幸)
짖궂게도 밀려들고 달려들어
우리의 손발만을 묶어 놓는가
뵈지 않는 사슬 마음마저 묶고녀
이 치욕(恥辱)의 화액(禍厄) 없애려면
일초(一秒)라 주저(躊躇)가 있으랴
불순(不純)코자 딴 상념(想念) 죽이고
빛 향(向)해 알몸으로 나스라
나스라, 떼포로펀듸스!
주석
백두 한라 삼천리(白頭 漢拏 三千里)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한반도 전역을 가리키는 표현. '삼천리'는 우리나라 국토를 통칭하는 말.
작희(作戱) 짓궂게 장난을 침. 또는 그런 장난.
팔초어(八稍魚) 다리가 여덟인 물고기, 곧 문어를 한자어로 이른 말.
화액(禍厄) 재앙과 액운. 뜻하지 않게 닥치는 불행한 일.
떼포로펀듸스 고대 그리스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를 음차한 것으로 보임. 조국의 위기에 맞서 끝까지 항거할 것을 외친 인물로, 분단을 거부하고 떨쳐 일어설 것을 촉구하는 호명.
심상·해설
베어낼 수 없는 바람과 끊을 수 없는 물처럼 하나여야 할 겨레가, 문어의 빨판에 휘감기듯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인 분단의 형상이 강렬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