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그 때가 언제나 옵니까
그대와 나 사이에
모든 가리움 없어지고,
넓은 햇빛 가운데
옷으로 가리우지 아니한
발가벗은 맨몸으로
얼굴과 얼굴을 대할
그 때가 언제나 옵니까
「사랑」과「믿음」의 불꽃이
낡은 「말」을 사루어
그대와 나 사이에
말없이 서로 알아듣고,
채침없이 서로 붙잡고,
음욕없이 서로 껴 안을
그 때가 언제나 옵니까
오, 그대 ! 나의 靈魂[영혼]의 벗인 그대 !
우리가 그리우는 「그때」가 오면,
「우리 世紀[세기]의 아침」이 오면,
그 때는 그대와 내가
부끄러워 눈을 피하지 않을 터이지요.
두려워 몸을 움츠러뜨리지 않겠지요.
오, 그대 ! 언제나 그 때가 옵니까?
―시집 「朝鮮[조선]의 마음」, 1924
주석
가리움 가림. 서로를 막아서는 거짓이나 꾸밈, 격의 따위를 통틀어 가리킨다.
사루어 / 사르다 불에 태워 없애다. '낡은 말을 사루어'는 진심을 가리던 묵은 말들을 사랑과 믿음의 불꽃으로 태워 없앤다는 뜻이다.
채침없이 '채침'은 사사로운 마음, 곧 사심(私心)을 뜻하는 말. 여기서는 아무런 딴 뜻 없이 서로를 대함을 가리킨다.
우리 세기의 아침 거짓과 가림이 사라진 참된 화합의 새 시대를 비유한 표현.
조선의 마음 1924년 펴낸 변영로의 시집 이름. 이 시가 실린 출처다.
심상·해설
넓은 햇빛 속에서 모든 꾸밈과 사심을 벗고 맨몸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거짓 없는 참된 합일의 순간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