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950년대
캐피탈 웨이
샅샅이 드러내놓는
대낮은 고발자(告發者)
눌러보고 싸 주어 아름답게만 보아주는
밤은 여인
시속 15마일의 안전 상태로
나 이 밤에 캐피탈 웨이를 달린다
낮에 낙엽을 줍던 이도 안 보이고
다람쥐처럼 옹송그리고 밤을 굽던 소년도 그 자리에 없다
하나 좋은 줄 모르고 날마다 오르내린 이 길이
오늘밤 유난히 멋지고 곱구나
몇백 환 택시의 효과여
가로수를 양옆에 끼고
포도(鋪道)를 미끄러지는 맛이 괜찮구나
보초 대신 칸칸이 늘어선
나의 수박등들의 아름다움이여
개 짖는 집 하나 없는 이 골목을
난 이제 조심조심 들어가야 한다
남의 집 급한 바느질을 하는 모퉁이집 할머니를 위해서
시린 손을 불며 과자봉지를 붙이는 반장 아저씨를 위해서
기침도 삼키고 나는 근신하며 들어서야 한다
주석
캐피탈 웨이 Capital Way. '수도(서울)의 길'이라는 뜻으로 붙인 표현. 화자가 밤에 택시로 달리는 도심 거리를 이른다.
환(圜) 1953~1962년에 쓰인 옛 화폐 단위. '몇백 환 택시'는 당시 택시 요금을 가리킨다.
포도(鋪道) 돌·아스팔트 등으로 포장한 길, 포장도로.
수박등 둥근 수박 모양의 가로등(또는 전등). 길가에 줄지어 켜진 등불을 이른다.
밤을 굽던 소년 여기서 '밤'은 군밤의 밤(栗). 길가에서 군밤을 굽던 소년을 가리킨다.
심상·해설
택시를 타고 밤의 포장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며 가로등 늘어선 도심 풍경을 새삼 곱게 바라보는 장면. 늦은 밤 일하는 이웃을 위해 기침마저 삼키며 골목에 드는 따뜻한 배려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