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950년대
망향
언제든 가리라
마지막엔 돌아가리라
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아이들이 한울타리 따는 길머리론
계림사(鷄林寺) 가는 달구지가 졸며 지나가고
대낮에 잔나비가 우는 산골
잔등 밑에서
딸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둥글레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접중화 싱아 뻐꾹채 장구채 범부채 마주재 기룩이
도라지 체니곰방대 곰취 참두릅 개두릅을 뜯던 소녀들은
말끝마다 ‘꽈’소리를 찾고
개암쌀을 까며 소년들은
금방망이 놓고 간 도깨비 얘길 즐겼다
목사가 없는 교회당
회당지기 전도사가 강도(講道) 상을 치며 설교하던 촌
그 마을이 문득 그리워
아라비아서 온 반마(斑馬)처럼 향수에 잠기는 날이 있다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메밀꽃이 하이야케 피는 곳
조밥과 수수엿이 맛있는 고을
나뭇집에 함박꽃을 꺾어오던 총각들
서울 구경이 소원이니
차를 타보지 못한 채 마을을 지키겠네
꿈이면 보는 낯익은 동리
우거진 덤불[叢]에서
찔레순을 꺾다 나면 꿈이었다
주석
계림사(鷄林寺) 절 이름. 고향 산골을 지나는 달구지의 행선지로 등장한다.
잔나비 원숭이의 옛말.
접중화·싱아·뻐꾹채·장구채·범부채·마주재·기룩이·체니곰방대 산과 들에서 나는 풀과 나물의 이름들. 일부는 지역 방언으로, 고향의 토속적 정경을 환기한다. '체니곰방대'는 천남성을 가리키는 방언으로 본다.
강도(講道) 상 설교를 하는 강대상(설교대). '강도'는 도리를 강설(講說)함, 곧 설교를 뜻한다.
반마(斑馬) 얼룩말. 이국적인 동물에 빗대어 타향에서 느끼는 향수를 드러낸다.
심상·해설
목화꽃·메밀꽃 피고 잔나비 우는 산골 고향, 나물 캐는 소녀들과 도깨비 이야기를 즐기던 소년들이 어우러진 토속적 정경. 끝내 찔레순을 꺾다 잠에서 깨는 꿈으로 닫히며 짙은 향수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