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950년대
사슴의 노래
하늘에 불이 났다
하늘에 불이 났다
도무지 나는 울 수 없고
사자같이 사나울 수도 없고
고운 생각으로 진여 씹을 것은 더 못 되고
희랍적인 내 별을 거느리고
오직 죽음처럼 처참하다
가슴에 꽂았던 장미를 뜯어버리는
슬픔이 커 상장(喪章)같이 처량한 나를
차라리 아는 이들을 떠나
사슴처럼 뛰어다녀보다
고독이 성(城)처럼 나를 두르고
캄캄한 어둠이 어서 밀려오고
달도 없어주
눈이 내려라 비도 퍼부어라
가슴의 장미를 뜯어버리는 날은
슬퍼 좋다
하늘에 불이 났다
하늘에 불이 났다
주석
희랍적(希臘的) 그리스적이라는 뜻. '희랍'은 그리스(Greece)의 음역으로, 고전적·이교적 정신이나 운명의 이미지를 환기한다.
진여 씹다 '질겅질겅 씹다', 곧 곱씹어 되새기는 모양을 이르는 표현으로 본다.
상장(喪章) 상중(喪中)임을 나타내려고 옷에 다는 검은 표지. 여기서는 슬픔에 잠긴 화자의 처량함을 빗댄다.
심상·해설
불이 난 듯 타오르는 하늘 아래, 가슴에 꽂았던 장미를 뜯어 버리며 사슴처럼 내달리는 격정의 자화상. 성벽처럼 에워싼 고독과 어둠 속에서 슬픔을 차라리 반기는, 처연하고도 강렬한 내면이 분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