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저무는 놀 안에서
거록하고 감사론 이 동안이
영영 잇게스리 나는 울면서 빈다.
하로의 이 동안― 저녁의 이 동안이
다맛 하로만치라도 머물러 있게스리 나는 빈다.
우리의 목숨을 기르는 이들
들에서 일깐에서 돌아오는 때다.
사람아 감사의 웃는 눈물로 그들을 씻자
한울의 한아님도 ᄶᅩ처낸 목숨을 그들은 기른다.
아 그들의 흘리는 땀방울이
세상을 만들고 다시는 움즉인다.
가지런이 뛰는 네 가슴속을 듯고 들으면
그들의 헐떡이든 거록한 숨결을 네가 차즈리라.
땀 찬 니마와 맥풀린 눈으로
괴론 몸 우막집에 쉬려 오는 때다.
사람아 마음의 입을 열어 그들을 기리자
한아님이 무덤 속에서 살아옴에다 엇지 견주랴.
거록한 저녁 꺼지려는 이 동안에 나 혼자 울면서 노래 부른다.
사람이 세상의 한아님을 알고 섬기게스리 나는 노래 부른다.
―一九二五 作―
주석
일깐 '일하는 곳', 곧 일터·일판의 옛 형태. 들이나 작업장에서 일하는 자리를 가리킨다.
한아님 / 한아님이 무덤 속에서 살아옴 '하느님'의 옛 표기. 시인은 땀 흘려 목숨을 기르는 노동자·농민이야말로 참된 '세상의 하느님'이며, 그들의 숭고함은 신의 부활(무덤 속에서 살아옴)에도 견줄 수 없다고 노래한다.
심상·해설
저녁놀이 사위어 가는 무렵, 들과 일터에서 땀에 젖어 돌아오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거룩한 숨결이 가슴에 스민다. 그들을 '세상의 하느님'으로 우러르며 홀로 울면서 노래 부르는 경건한 위안이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