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950년대
창변
서리 내린
지붕 지붕엔 밤이 안고
그 안에 꽃다운 꿈이 뒹굴고
뉘집인가 창이 불빛을 한 입 물었[含]다.
눈비탈이
하늘 가는 길처럼 밝구나
그 속에 숱한 애기들을 줍고 있으면
어려서 잊어버린 ‘집’이 살아났다.
창으로 불빛이 나오는 집은 다정해
볼수록 정다워
저 안엔 엄마가 있고
아버지도 살고
그리하여 형제들은 다행하고―
마음이 가난한 이는 눈을 모아
고운 정경(情景)을 한참 마시다―
아늑한 ‘집’이 온갖 시간에 벌어졌다.
친정엘 간다는 새댁과 마주 앉은
급행열차 밤 찻간에서도
중년 신사는 나비넥타이를 찼고
유복한 부인은 물건을 온종일 고르고
백화점 소녀는 피곤이 밀린 잡답(雜沓) 속에서도
또 어느 조그만 집 명절 떡 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기댈 데 없는 외로움이 박쥐처럼 퍼덕이면
눈 감고
가다가
슬프면 하늘을 본다.
주석
물었[含]다 원문에 한자 '含(머금을 함)'을 병기해 '머금다'의 뜻임을 밝힌 표현. 창이 불빛을 머금은 모양을 이른다.
잡답(雜沓) 사람이 많이 몰려 북적이는 모양. 혼잡, 북새통.
정경(情景) 정서를 자아내는 광경이나 장면.
심상·해설
서리 내린 지붕과 눈 덮인 비탈, 불빛이 새어 나오는 따뜻한 창들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집'을 그리는 겨울밤. 가족의 온기에서 소외된 화자의 외로움이 박쥐의 날갯짓처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