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센티멘탈
I
포름한하늘에 햇빛이 우렷하고
은빛 비늘구름이 반짝반득이며
「나아가잤구나 나아가잤구나」
가자니 아─ 어디를 가잔말이냐
솔나무밑에 발을멈추다─
잔디밭에가 퍽주저앉다─
아─ 그러지않아 답답한가슴을
왜이리건드려 쑤석거려내느냐
가을날우는듯한 바이올린소리따라
마련없는 나그네길로 나를불러내느냐
무엇 찾어야할줄도 모르는길로
발사슴하는욕망에 가슴죄이며 걸으랴느냐
II
저넓은들에 누른기운이 움직이고
저기사과밭에 붉은빛이 얽혀지는데
병풍같이 둘린산이 의젓이 맞는듯하고
훤칠한 큰길이 끝없이 펼쳐있는데
아─ 이하늘아래 이공기속에
열매익히는 저햇빛가득담은 술잔을
고마이받들어 앞뒤없이 취하든못해도
눈감은 만족에 바다같이 가라앉지도못하고
가슴에 머리에 넘치는 울음을
눈썹하나 깜딱이지 못하는 사람은
주석
센티멘탈 (Sentimental) '감상적(感傷的)', 까닭 없이 슬프고 서글픈 정서를 뜻하는 영어 제목.
포름한 '파르스름한'의 옛말. 엷게 푸른빛이 도는.
우렷하고 또렷하고 환하게 빛나는 모양. '우렷하다'는 어렴풋하면서도 뚜렷이 드러나 보임.
발사슴 발걸음을 옮겨 디딤. 정처 없이 발을 떼어 걷는 모양.
심상·해설
은빛 구름 뜬 가을 하늘 아래, 익어 가는 들판과 사과밭을 보면서도 마음껏 취하지도 가라앉지도 못한 채 까닭 모를 울음을 삼키는 감상적 장면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