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코스모스 꽃
가을 볕 엷게 나리는 울타리 가에
쓸쓸히 웃는 코스모스꽃이여!
너는 전원(田園)이 기른
청초한 여시인(女詩人)
남달리 심벽(深碧)한 곳, 늦 피는 성격을 가졌으매
세상의 영예(榮譽)는 저 구름 밖에 멀었나니.
높은 상념(想念)의 나라는 쉽사리 닿을 길 없고
차디찬 가슴에 남모를 애수(哀愁)가 찌었도다.
멀지 않아 서릿바람 높고 하늘이 차면
호젓한 네 혼을 어느 강산에 붙이리!
제비의 엷은 나래도 이미 향수에 지쳐
나란히 전선(電線) 위에 모여 앉아 강남행(江南行)을 꾀하나니.
마음에 영락(零落)의 만가(輓歌)가 떠돌고
한야(寒夜)의 기러기 엷은 꿈을 깨워 주기 전.
해말쑥한 너 입술 위에
나는 키스를 남기고 가노라.
주석
심벽(深碧) 깊고 푸름. 여기서는 외지고 그윽한 곳, 남들이 잘 찾지 않는 깊은 자리를 뜻한다.
영락(零落) 초목의 잎이 시들어 떨어짐. 또는 세력이 쇠하여 보잘것없어짐.
만가(輓歌) 죽은 이를 애도하는 노래, 장송곡.
한야(寒夜) 추운 밤.
강남행(江南行) 제비가 가을에 따뜻한 강남으로 돌아간다는 옛 관념에서 온 표현이다.
심상·해설
엷은 가을 볕 드는 울타리 가에 쓸쓸히 웃는 코스모스를 청초한 여시인에 빗대어, 서릿바람과 추위가 닥치기 전 그 해말쑥한 꽃잎에 작별의 입맞춤을 남기는 애틋한 장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