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슬픈 기차
우리들의 기차는 아지랑이 남실거리는 섬나라 봄날 왼하루를 익살스런 마드로스 파이프로 피우며 간 단 다.
우리들의 기차는 느으릿 느으릿 유월소 걸어가듯 걸어 간 단 다.
우리들의 기차는 노오란 배추꽃 비탈밭 새로
헐레벌떡거리며 지나 간 단 다.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마음만은 가벼워
나는 차창에 기댄 대로 휘파람이나 날리자.
먼데 산이 군마처럼 뛰여오고 가까운데 수풀이 바람처럼 불려 가고
유리판을 펼친듯, 뇌호내해 퍼언한 물 물. 물. 물.
손가락을 담그면 포도빛이 들으렸다.
입술에 적시면 탄산수처럼 끓으렸다.
복스런 돛폭에 바람을 안고 옷배가 팽이처럼 밀려가 다 간,
나비가 되여 날러간다.
나는 차창에 기댄대로 옥토끼처럼 고마운 잠이나 들자.
청만틀 깃자락에 마담.R의 고달픈 뺨이 붉으레 피였다. 고은 석탄불처럼 이글거린다.
당치도 않은 어린아이 잠재기 노래를 부르심은 무슨 뜻이뇨?
잠 들어라.
가여운 내 아들아.
잠 들어라.
나는 아들이 아닌것을, 옷수염 자리 잡혀가는, 어린 아들이 버얼서 아닌것을.
나는 유리쪽에 가깝한 입김을 비추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이나 그시며 가 자.
나는 늬긋 늬긋한 가슴을 밀감쪽으로나 씻어나리자.
대수풀 울타리마다 요염한 관능과 같은 홍춘이 피맺혀 있다.
마당마다 솜병아리 털이 폭신 폭신 하고,
지붕마다 연기도 아니뵈는 햇볕이 타고 있다.
오오, 개인 날세야, 사랑과 같은 어질머리야, 어질머리야.
청만틀 깃자락에 마담 R의 가여운 입술이 여태껏 떨고 있다.
누나다운 입술을 오늘이야 싫것 절하며 갑노라.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오오, 나는 차보다 더 날러 가랴지는 아니하랸다.
주석
마드로스 네덜란드어 matroos에서 온 말로 뱃사람·선원을 뜻한다. '마드로스 파이프'는 선원이 물던 굵은 담뱃대.
유월소 유월 무더위 속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소. 기차가 천천히 가는 모양을 빗댔다.
뇌호내해(瀨戶內海) 일본 혼슈·시코쿠·규슈에 둘러싸인 잔잔한 바다 세토내해(瀨戶內海).
청만틀(靑만틀) 푸른 빛깔의 망토(manteau). '만틀'은 외투·망토를 뜻하는 외래어.
홍춘(紅椿) 붉은 동백꽃.
심상·해설
아지랑이 어린 봄날, 배추꽃 비탈과 잔잔한 바다를 따라 느릿느릿 달리는 기차 안에서 마담 R의 자장노래를 들으며 화자가 슬픔과 나른함에 잠겨드는 정경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