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안겨서
님 자채 달도 밝고 님으로 해 꽃도 고와,
진실로 님 아니면 꿀이 달랴 쑥이 쓰랴,
해 떠서 번하옵기로 님 탓인가 하노라.
감아서 뵈던 그가 뜨는 새에 어디 간고,
눈은 아니 믿더라도 소리 어이 귀에 있나,
몸 아니 계시건마는 만져도 질 듯하여라.
무어라 님을 할까 해에다나 비겨볼까,
쓸쓸과 어두움이 얼른하면 쫓기나니,
아무리 겨울 깊어도 응달 몰라 좋아라.
구태라 어디다가 견주고자 아니하며,
억지로 무엇보다 낫다는 것 아니건만,
님대로 고우신 것을 아니랄 길 없어라.
한고작 든든커늘 외로웁게 보시고녀,
알뜰한 우리 님만 오붓하게 뫼신 적을,
뭇사람 들레는 곳이야 차마 쓸쓸하건만.
넣었다 집어내면 안 시원한 것 없으시니,
우리 님 풀무에는 피운 것이 무슨 숯고,
무르다 버릴 무엇이 어디 있을꼬 하노라.
믿거라 하실수록 의심 더욱 나옵기는,
아무리 돌아봐도 고일 무엇 없을세지,
행여나 주시는 마음 안 받는다 하리까.
남은 다 아니라커늘 나는 어이 그리 뵈나,
어줍은 저를 믿어 속을 적에 속더라도,
티 없는 구슬로 아니 안 그릴 줄 있으랴.
큰 눈을 작게 뜨다 마지막엔 감았세라,
님보담 나은 뉘와 남보담 못 하신 무엇,
없기야 꼭 없지마는 행여 뵐까 저허라.
주석
님 자채 님의 덕택에. '자채'는 '덕분·덕택'을 뜻하는 옛말.
번하옵기로 (날이) 환히 밝아지기에. '번하다'는 어둠이 걷혀 밝다는 뜻.
한고작 더없이, 한껏. 정도가 매우 높음을 이르는 옛말.
보시고녀 보시는구나. '-고녀'는 감탄을 나타내는 옛 종결어미.
들레는 여럿이 떠들썩하게 떠드는. '들레다'의 관형형.
풀무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여기서는 님의 너른 도량을 비유한다.
고일 사랑받을. '고이다(괴다)'는 '사랑하다'의 옛말.
저허라 두려워하노라. '저어하다'의 옛 형태.
심상·해설
달과 꽃, 햇빛마저 모두 님 덕분으로 느껴지는 절대자 같은 임의 품에 안겨, 보이지 않아도 만지면 잡힐 듯한 임을 향한 사무친 사랑과 의탁의 정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