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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티
1930년대

로제티

박용철 · 1930년대
물오른 가지 위에 깃들이어 노래하는 새와 같은 내 마음; 열매 가득 맺어 가지 휘어진 참한 사과나무 같은 내 마음 고즈넉한 바닷속을 나도는 무지개 빛 자개 같은 내 마음 모든 이것보다 한결 더 기뻐라 내 사랑이 내게 오셨나니. 은빛 여우털로 높은 자리 베풀고 자줏빛 아롱 비단 앞을 드리라 거기 아로새기라 비둘기와 석류 백 개의 눈이 있는 공작의 날개를 금과 은으로 포도 잎과 열매를 흰빛으로 창포꽃을 새겨넣으라 내 생명의 생일이 되었으니 내 사랑이 내게 오셨으니. 노래 C • G • 로세티 피어나는 청춘에는 장미화를, 다 이루어진 한창에는 월계수를; 내 차례는 담쟁이 한 가지 꺾소 제때 되지 않아 미리 늙었으니. 젊은이의 무덤에는 시르미꽃, 한창때 가신 이에겐 월계화를; 내게 드릴 것은 마른 잎사귀라 일찍이 손소 거두어 두었으니. 두 번 C • G • 로세티 나는 손에 내 마음 내어 들고 (내 사랑 오—내 사랑아), 말하기를…나는 그대 마음대로 살리시든 죽이시든, 이 한 번은 내 말씀 들어주오 (내 사랑 오—내 사랑아)— 그러나 어려울손 여자의 말; 그대 말씀하였어야 옳은 것을. 그대 손에 내 마음 집어 들고 다정한 듯 웃으시며, 매운 눈에 자상히 살펴보고, 이를 내려놓으시며, 말씀하길…아직 덜 익었으니 좀 기다려 좋으리다; 종다리 노래할 새 가만있다, 들곡식 누를 때를 기다리오. 그대 내려놓을 제 이 마음 깨어졌오, 허나 나는 놀라쟎고; 그대의 모든 말씀 하신 대답 웃음 짓고 들었으나… 그담부터 나는 별로 웃지 않고, 물을 말도 드물었오, 밭고랑에 피인 꽃도 돌보쟎고, 새소리 따라 노래도 아니했오. 나는 손에 내 마음 내어 들고 하나님 오 내 하나님, 깨어진 내 마음을 손에 들고… 당신이 보셨으니 판단하옵소서. 내 희망은 모래 위에 씌었던 것, 하나님 오 하나님… 당신의 판단을 이제 내리소서, 이제 나를 재판하옵소서. 이는 한 사람의 없이 여김 받아, 돌봄 없는 하룻날에 다쳤나니, 이 마음 당신 손에 드시옵고 안팎 없이 살피소서… 이의 금을 불로 다스리시고 찌꺼기를 녹여내옵소서— 차라리 당신 손에 잡아두사, 아무도 못 가지게 하옵소서 나는 손에 내 마음 내어 들고— 나는 죽지 않고 살으리다— 당신이 이런 대로 부르셨으니, 당신 앞에 나와 섰나이다… 내 가진 것 남김없이 가져오고, 음시런이 나를 바칩니다, 그대여 웃으시면 나는 노래하오리다, 그러나 많은 일을 알려 들지 않으리다. 노래 C • G • 로세티 내가 죽거들랑 사랑하는 이여, 나를 위해 서러운 노래 하지 마오; 내 머리맡에 장미화 심지 말고 그늘 깊은 전나무도 세우지 마오; 비도 맞고 밤이슬에 흠씬 젖어 푸른 풀 자라 내 위에 덮게 하오… 그런 다음 안 잊으면 잊지 말고 잊어지면 잊는다 어떠하리. 나는 나무 그늘 볼 수 없을 것이오 비 오는 줄 알지도 못하려니 쉬지 않고 괴로운 듯 노래하는 밤꾀꼬리 노래도 못 들으리 더 어두움 밝음 없이 한양 같은 어스름 밝음 꿈속으로 지나갈 제 어찌하면 이 세상일 안 잊히리 어찌하면 아주 잊어 모르오리. 헛보임 C • G • 로세티 내가 보던 희망이란 꿈이었네 다만 한낱 꿈이었네, 이제 깨어 보니 할 수 없이 외로웁고 늙고 피로웠네 한낱 꿈을 말미암아. 나는 나의 거문고를 나무 끝에 거네 호숫가에 울고 섰는 버드나무, 비틀려 줄 끊어져 소리 없는 내 거문고 한낱 꿈을 말미암아 가만가만있어 깨어지는 내 마음아, 말없는 내 마음아 가만히 깨지거라 삶과 세상 내 몸까지 아주 달라졌다 한낱 꿈을 말미암아. 달음질 노래 C • G • 로세티 우리 깨지 않아 자는 때에, 해는 바다에서 뛰어올라 —햇빛이 그 뛰련에 생겨나고!— 빠르고 자유롭고 힘에 넘쳐, 온통 바다에 멱 감으려 속 태운다. 우리 장난치고 노닐 적에 —한 해가 한양 오월이라면!— 바람은 가까이 와 지나간다 땅으로 지나, 바다를 지나, 그의 갈 곳 어디런지 그곳 향하여 이제 때 되었다, 다 일어나, 바라뵈는 상품으로 달려가자, —해도 달리고 바람도 달리고 우리는 힘 있고 자유롭고, 갈 곳은 별과 바다 넘어 멀리란다. ○ C • G • 로세티 젊은 사랑이 잠들어 누워 일 년에도 오월 달에 나리꽃들 속에 부드런 빛에 싸여 흰 양들 풀 뜯으러 와 흰 비둘기는 집 지으러 와 그의 둘레에는 산마저 떨기 희다 부드런 이끼는 더 연한 뺨의 베개 넓은 잎사귀들 무거운 눈에 그림자 던지고 바람과 물도 달래어져 소리 못하고 어스름한 빛이 거기 하늘에서 가장 오래 머뭇거린다 젊은 사랑은 꿈 보며 누워 그러나 그 꿈 이야기를 누가 하리 바삭이는 숲풀 끝에 온전한 햇빛인가 졸졸하는 시내 위에 온전한 달빛인가 그리운 입술의 노래인가 졸음 오는 공기를 채워 향료 그의 가에 타고 조용한 댄스는 그를 둘러 이리저리 짠다

주석

로세티 영국 여성 시인 크리스티나 로세티(Christina G. Rossetti). 신앙과 사랑, 죽음을 노래한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 시인. 박용철이 그의 여러 시를 옮겨 묶었다.

내 생일(A Birthday) 첫 시는 로세티의 유명한 'A Birthday'. 사랑하는 이가 온 날을 '내 생명의 생일'이라 부르며 새와 사과나무, 무지갯빛 조개에 마음을 비유한다.

노래(When I am dead) '내가 죽거든'으로 시작하는 시는 로세티의 'Song(When I am dead, my dearest)'. 죽은 뒤의 슬픔도 망각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명편이다.

시르미꽃 꽃 이름을 우리말로 옮긴 것. 젊어서 죽은 이의 무덤에 바치는 꽃으로 쓰였다.

월계수·담쟁이 월계수는 승리와 영광, 담쟁이는 한창때를 지나 시든 처지를 상징한다. 화자는 제때가 지나 미리 늙었기에 마른 잎만 바친다고 노래한다.

심상·해설

사랑이 온 날을 생명의 생일이라 노래하는 환희에서, 손에 든 마음을 두 번 내밀었다 깨어지는 사랑의 좌절, 죽은 뒤 풀에 덮여 잊혀도 좋다는 담담한 체념까지, 로세티 서정의 폭넓은 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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