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사랑의 존재
사랑을 「사랑」이라고하면 벌써 사랑은아닙니다
사랑을 이름지을만한 말이나글이 어데있습닛가
미소(微笑)에 눌려서 괴로운듯한 장미(薔薇)빛 입설인들 그것을 스칠수가 있습닛가
눈물의뒤에 숨어서 슬픔의 흑암면(黑闇面)을 반사(反射)하는 가을 물결의눈인들 그것을 비칠수가 있습닛가
그림자없는구름을 거쳐서 메아리없는 절벽(絶壁)을 거쳐서 마음이 갈수없는바다를 거쳐서 존재(存在)? 존재(存在)입니다
그나라는 국경(國境)이 없습니다 수명(壽命)은 시간(時間)이 아닙니다
사랑의 존재(存在)는 님의눈과 님의마음도 알지못합니다
사랑의 비밀(秘密)은 다만 님의 수건(手巾)에 수(繡)놓는 바늘과 님의 심으신 꽃나무와 님의잠과 시인(詩人)의 상상(想像)과 그들만이 압니다
주석
흑암면(黑闇面) 검고 어두운 면. 슬픔의 어두운 측면을 뜻함.
수건(手巾)에 수(繡)놓는 바늘 임이 곁에서 정성스레 수를 놓던 일상을 가리키는 이미지로, 말로 표현되지 않는 사랑의 비밀을 함축.
심상·해설
말로는 담을 수 없는 사랑이 그림자 없는 구름과 메아리 없는 절벽 너머에 존재하고, 수건에 수놓는 바늘과 잠든 임의 모습 속에 그 비밀이 깃든 장면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