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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
1930년대

온정

정지용 · 1930년대
그대 함께 한나절 벗어나온 그 머흔 골짜기 이제 바람이 차지하는다. 앞 나무의 곱은 가지에 걸리어 파람 부는가 하니 창을 바로 치놋다. 밤 이윽자 화롯불 아쉬워지고 촛불도 추위 타는 양 눈썹 아사리느니 나의 눈동자 한밤에 푸르러 누운 나를 지키는다. 푼푼한 그대 말씨 나를 이내 잠들이고 옮기셨는다. 조찰한 베개로 그대 예시니 내사 나의 슬기와 외롬을 새로 고를 밖에! 땅을 쪼개고 솟아 고이는 태고로 하냥 더운 물 어둠 속에 홀로 지적거리고 성긴 눈이 별도 없는 거리에 날리어라.

주석

온정(溫井) 땅에서 더운물이 솟는 온천. 시 끝의 '땅을 쪼개고 솟아 고이는 더운 물'이 곧 온정이다.

머흔 험하다·험상궂다는 뜻의 옛말 '머흘다'에서 온 말. '머흔 골짜기'는 험한 골짜기.

파람 휘파람의 준말. 바람이 가지에 걸려 내는 소리를 가리킨다.

눈썹 아사리느니 촛불의 불꽃(눈썹에 빗댐)이 추위에 떨듯 흔들린다는 뜻.

푼푼한 모자람 없이 넉넉하고 너그러운.

조찰한 맑고 깨끗한, 정갈한.

하냥 늘·한결같이·언제나의 뜻을 가진 옛말.

심상·해설

별도 없는 겨울밤, 바람이 창을 치고 촛불이 추위에 떠는 온천 골짜기 방에서, 다정한 그대가 잠재워 준 화자가 어둠 속에 홀로 솟는 더운물 소리와 흩날리는 눈을 느끼는 포근하고도 적막한 정경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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