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시인에게
한 편(篇)의 시(詩) 그것으로
새로운 세계(世界) 하나를 낳아야 할 줄 깨칠 그 때라야
시인(詩人)아 너의 존재(存在)가
비로소 우주(宇宙)에게 없지 못할 너로 알려질 것이다
가뭄 든 논꼬에는 청개구리의 울음이 있어야 하듯-
새 세계(世界)란 속에서도
마음과 몸이 갈려 사는 줄 풍류만 나와 보아라
시인(詩人)아 너의 목숨은
진저리 나는 절름발이 노릇을 아직도 하는 것이다
언제든지 일식(日蝕)된 해가 돋으면 뭣 하며 진들 어떠랴
시인(詩人)아 너의 영광(榮光)은
미친 개구리도 밟는 어린애의 잠 없는 그 마음이 되어
밤이라도 낮이라도
새 세계(世界)를 낳으려 소댄 자국이 시(詩)가 될 때에― 있다
촛불로 날아들어 죽어도 아름다운 나비를 보아라
주석
논꼬 논배미, 곧 한 뙈기의 논. '가뭄 든 논꼬'는 메마른 현실을 가리킨다.
일식(日蝕)된 해 달에 가려 빛을 잃은 해. 빛을 빼앗긴 시대·세계를 상징한다.
절름발이 노릇 온전치 못하고 절뚝거리는 삶. 새 세계를 낳지 못한 시인의 불완전한 처지를 빗댄 말이다.
소댄 자국 '솟구쳐 댄·온 힘을 다해 내디딘' 자국. 새 세계를 낳으려 분투한 흔적을 뜻한다.
심상·해설
가뭄 든 논에 청개구리 울음이 있어야 하듯, 시인은 시 한 편으로 새 세계 하나를 낳아야 비로소 존재한다고 외친다. 촛불에 날아들어 죽어도 아름다운 나비처럼, 시인의 헌신적 영광이 비장하게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