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가외가전
1930년대

가외가전

이상 · 1930년대
훤조 때문에 마멸되는 몸이다. 모두가 소년이라고들 그리는데 노야인 기색이 많다. 혹형에 씻기워서 산반알처럼 자격 너머로 튀어오르기 쉽다. 그러니까 육교 위에서 또 하나의 편안한 대륙을 내려다보고 근근히 산다. 동갑네가 시시거리며 떼를 지어 답교한다. 그렇지 않아도 육교는 또 월광으로 충분히 천칭처럼 제 무게에 끄덱인다. 타인의 그림자는 위선 넓다. 미미한 그림자들이 얼떨김에 모조리 앉아 버린다. 앵두가 진다. 종자도 연멸한다. 정탐도 흐지부지─있어야 옳을 박수가 어째서 없느냐. 아마 아버지를 반역한가 싶다. 묵묵히─기도를 봉쇄한 체하고 말을 하면 사투리다. 아니─이 무언이 훤조의 사투리리라. 쏟으려는 노릇─날카로운 신단이 싱싱한 육교 그 중 심한 구석을 진단하듯 어루만지기만 한다. 나날이 썩으면서 가리키는 지향으로 기적히 골목이 뚫렸다. 썩는 것들이 낙차 나며 골목으로 몰린다. 골목 안에는 치사스러워 보이는 문이 있다. 문 안에는 금니가 있다. 금니 안에는 추잡한 혀가 달린 폐환이 있다. 오─오─. 들어가면서 나오지 못하는 타입 깊이가 장부를 닮는다. 그 위로 짝 바뀐 구두가 비철거린다. 어느 균이 어느 아랫배를 앓게 하는 것이다. 질다. 반추한다. 노파니까. 맞은편 평활한 유리 위에 해소된 정체를 도포한 졸음 오는 혜택이 뜬다. 꿈─꿈─ 꿈을 짓밟는 허망한 노역─이 세기의 곤비와 살기가 바둑판처럼 널리 깔렸다. 먹어야 사는 입술이 악의로 꾸긴 진창 위에서 슬며시 식사 흉내를 낸다. 아들─여러 아들─노파의 결혼을 걷어차는 여러 아들들의 육중한 구두─구두 바닥의 징이다. 층단을 몇 번이고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우물이 드물다. 좀 지각해서는 텁텁한 바람이 불고─하면 학생들의 지도가 요일마다 채색을 고친다. 객지에서 도리 없이 다수굿하던 지붕들이 어물어물한다. 즉 이 취락은 바로 여드름 돋는 계절이래서 으쓱거리다 잠꼬대 위에 더운물을 붓기도 한다. 갈─이 갈 때문에 견디지 못하겠다. 태고의 호수 바탕이던 지적이 짜다. 막을 버틴 기둥이 습해 들어온다. 구름이 근경에 오지 않고 오락 없는 공기 속에서 가끔 편도선들을 앓는다. 화폐의 스캔들─발처럼 생긴 손이 염치없이 노파의 통고하는 손을 잡는다. 눈에 띄지 않는 폭군이 잠입하였다는 소문이 있다. 아기들이 번번이 애총이 되고 되고 한다. 어디로 피해야 저 어른 구두와 어른 구두가 맞부딪는 꼴을 안 볼 수 있으랴. 한창 급한 시각이면 가가호호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멀리 포성과 시반이 제법은 은은하다. 여기 있는 것들 모두가 그 방대한 방을 쓸어 생긴 답답한 쓰레기다. 낙뢰 심한 그 방대한 방 안에는 어디로선가 질식한 비둘기만 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들어 왔다. 그러니까 강하던 것들이 역마 잡듯 픽픽 쓰러지면서 방은 금시 폭발할 만큼 정결하다. 반대로 여기 있는 것들은 통 요사이의 쓰레기다. 간다. 『손자』도 탑재한 낙차가 방을 피하나 보다. 속기를 펴 놓은 상궤 위에 알뜰한 접시가 있고 접시 위에 삶은 계란 한 개─포크로 터뜨린 노른자위 겨드랑에서 난데없이 부화하는 훈장형 조류─푸드덕거리는 바람에 방안지가 찢어지고 빙원 위에 좌표 잃은 부첩 떼가 난무한다. 궐련에 피가 묻고 그날 밤에 유곽도 탔다. 번식하고 거짓 천사들이 하늘을 가리고 온대로 건넌다. 그러나 여기 있는 것들은 뜨뜻해지면서 한꺼번에 들떠든다. 방대한 방은 속으로 곪아서 벽지가 가렵다. 쓰레기가 막 붙는다.

주석

가외가전(街外街傳) '거리 밖의 거리에 관한 전(傳)'이라는 뜻. 이상이 1936년 발표한 난해한 산문시로, 식민지 도시의 병들고 부패한 풍경을 다층적으로 그린 대표작.

훤조(喧噪)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소음.

노야(老爺) 늙은 남자, 늙은이.

산반(算盤)알 주판알.

답교(踏橋) 정월 대보름 밤에 다리를 밟으며 건너던 풍속, 또는 다리를 밟고 지나감.

위선(爲先) 우선, 먼저.

연멸(煙滅) 연기처럼 사라져 없어짐.

신단(神丹) 여기서는 날카로운 메스(진찰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힌다.

곤비(困憊) 지치고 고달픔.

애총 어린아이의 무덤.

시반(屍斑) 죽은 뒤 피부에 생기는 검붉은 반점.

방안지(方眼紙) 모눈종이.

부첩(訃牒) 부고를 알리는 쪽지, 부고 종이.

『손자(孫子)』 고대 중국의 병법서 손자병법. 여기서는 책 한 권의 무게·지식의 상징으로 쓰였다.

심상·해설

달빛 아래 저울처럼 흔들리는 육교, 썩은 것들이 몰려드는 골목, 폐병 든 금니의 입속, 쓰레기로 곪아 가는 거대한 방이 줄지어 펼쳐진다. 병들고 부패한 식민지 도시의 내장을 들여다보는 듯한 음울한 풍경이다.

이상의 다른 작품

비슷한 심상의 다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