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회한의 장
가장 무력한 사내가 되기 위하여 나는 얼금뱅이였다
세상의 한 명의 여성도 나를 돌아보는 일은 없다
나의 나태는 안심이다
양팔을 자르고 나의 직무를 피했다
이제 나에게 일을 시키는 자는 없다
내가 무서워하는 지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역사란 무거운 짐이다
세상을 향한 나의 사표의 서법은 더욱이 무거운 짐이다
나는 나의 문자를 닫아버렸다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나는 읽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세상에 맞지 않는 옷이다
봉분보다도 나의 의무는 적다
나에게 무엇인가를 이해할 고통은 완전히 사라져 있다
나는 누구도 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에게도 보이지 않을 게다
처음으로 나는 완전히 비겁해지기에 성공한 셈이다
주석
회한(悔恨) 뉘우치고 한탄함.
얼금뱅이 얼굴이 얽은 자국이 많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곰보.
서법(書法) 글씨를 쓰는 법, 또는 그 솜씨.
사표(辭表) 직책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적어 내는 문서.
봉분(封墳)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 만든 무덤.
심상·해설
스스로 양팔을 자르고 글자를 닫아건 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려는, 무력함을 자청한 자아가 세상에서 완전히 물러나 비겁을 자조하는 차가운 독백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