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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전보도 안 치고
1930년대

봄은 전보도 안 치고

김기림 · 1930년대
아득한 황혼의 찬 안개를 마시며 긴―말 없는 산허리를 기어오는 차소리 우루루루 오늘도 철교는 운다. 무엇을 우누. 글쎄 봄은 언제 온다는 전보도 없이 저 차를 타고 도적과 같이 왔구려 어머니와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골짝에서 코고는 시냇물들을 불러 일으키면서……. 해는 지금 붉은 얼굴을 벙글거리며 사라지는 엷은 눈 위에 이별의 키쓰를 뿌리노라고 바쁘게 돌아다니오. 포풀라들은 파―란 연기를 뿜으면서 빨래와 같은 하―얀 오후의 방천에 늘어서서 실업쟁이처럼 담배를 피우오. 봄아 너는 언제 강가에서라도 만나서 나에게 이렇다는 약속을 한 일도 없건만 어쩐지 무엇을―굉장히 훌륭한 무엇을 가져다 줄 것만 같애서 나는 오늘도 괭이를 멘 채 돌아서서 아득한 황혼의 찬 안개를 마시며 긴―말이 없는 산기슭을 기어오는 기차를 바라본다.

주석

방천(防川) 둑. 물가에 흙이나 돌로 쌓아 물을 막은 둑길.

포풀라 포플러(poplar). 미루나무 종류의 가로수.

괭이 땅을 파거나 흙을 고르는 데 쓰는 농기구.

심상·해설

황혼의 찬 안개 속, 봄이 도둑처럼 기차를 타고 와 시냇물을 깨우고 녹는 눈에 입맞추는, 무언가 훌륭한 것을 기다리는 설레는 봄날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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