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그믐밤
얇은 별 고요히 창에 나리니
투명의 내 손가락이 더욱 외로와······
화롯가에 하얀 재 함께
이 해도 이만 저무는구나.
소나무 가지 위에
행여 까치 한 마리 못 울게 하라.
소 털 끝 같은 내 생리를
고이 달래 이 밤을 재우련다.
눈이 나려 옵니다
눈이 나려 옵니다.
철사의 걸음보다
더 가벼이.
눈이 나려옵니다
눈이 나려옵니다.
꿈속의 밤보담
더 고요히
냉수 같은 이마 우으로
밤이 흐른다.
이 순간 나는
가장 행복함이어니
꿈에도 날
행여 검은 골로 이끌지 마라.
가냘픈 내 생리를
고이 달래 이 밤 재우련다.
주석
생리(生理) 여기서는 살아 있는 목숨, 곧 가냘프고 여린 생명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철사(鐵絲)의 걸음 가느다란 쇠줄(철사)의 걸음. 눈이 그만큼 가볍고 소리 없이 내림을 비유한 표현이다.
검은 골 검은 골짜기. 죽음이나 어둠, 불길한 곳을 비유한 표현으로 쓰였다.
심상·해설
한 해가 저무는 그믐밤, 화롯가 하얀 재와 창에 내리는 별빛 속에 눈이 실보다 가벼이 내리고, 냉수 같은 이마 위로 고요히 밤이 흐르는 정밀한 평온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