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올빼미
오월 농록(濃綠)의 여름이 또 와서
고허(古墟)의 우울(憂鬱)은 한층 더 짙도다
한낮에도 광명을 등진
반역의 슬픈 유족(遺族), 오오 올빼미여!
자유는
이 땅에서 빼앗긴지 오래였나니
혈전(血傳)의 네 날카로운 주둥아리
차디찬 역사를 씹으며 이대로 감인(堪忍)할 것가.
다람쥐도 이르지 않는 검은 동혈(洞穴) 속에
너는 영원한 홀아비 오오 올빼미여!
남달리 큰 두 눈에 눈물 없음을 나는 아노라
은인(隱忍)의 발톱을 무릎 아래 감추어라.
여름 긴긴 해 울노(鬱怒)의 하루가 저물면
세상이 다 자는 너 대기(待機)의 밤은 이제 오리니
쭈구린 날개를 펴고 창공을 향하여
바람같이 번개같이 밤을 잃지 말아라.
주석
고허(古墟) 옛터, 오래된 폐허. 빼앗긴 조국·역사의 터전을 상징한다.
혈전(血傳) 핏줄로 대대로 전해 옴. 올빼미가 타고난 본성과 한을 가리킨다.
감인(堪忍) 괴로움을 참고 견딤.
동혈(洞穴) 굴, 동굴.
은인(隱忍) 괴로움을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참고 견딤.
울노(鬱怒) 가슴에 맺혀 풀리지 않는 답답한 분노.
심상·해설
한낮의 빛을 등지고 검은 굴속에 웅크린 올빼미가 발톱을 감춘 채 밤을 기다리다가, 세상이 잠든 어둠 속에서 날개를 펴고 바람처럼 번개처럼 솟구치는 결의의 장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