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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달밤
1930년대

한강의 달밤

심훈 · 1930년대
은하수(銀河水)가 흘러 내리는 듯 쏟아지는 달빛이 잉어(鯉魚)의 비늘처럼 물결 위에 뛰노는 여름 밤에 나와 보트를 같이 탄 세 사람의 여성(女性)이 있었다. 으늑한 포플러 그늘에 뱃머리를 대고 손길을 마주 잡고서 꿈속 같이 사랑을 속삭이려면 달도 부끄럼을 타는 듯 구름 속으로 얼굴을 가렸었다. 물결도 잠자는 백사장(白沙場)에 찍혀진 발자국은 어느 곳에 끝이 나려는 두 줄기 레일(軌道)이던가 몇 번이나 두 몸이 한 덩이로 뭉쳤었던가. 아아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모든 것이 꿈이다 초저녁에 꾸다가 버린 꿈보다도 허무(虛無)하고 기억(記憶)조차 저 물결 같이 흐르고 말려 한다. 그 중(中)에 가장 어여쁘던 패성(浿城)의 계집아이는, 돈 있는 놈에게 속아서 못된 병(病)까지 옮아, 피를 토(吐)하다가 청춘(靑春)을 북망산(北邙山)에 파묻었다. 「당신 아니면 죽겠어요」 하던 또 한 사람은, 배 맞았던 사나이와 벌어진 틈에 나를 끼워서 얕은 꾀로 이용(利用)하고는 발꿈치를 돌렸다. 마지막 동혈(同穴)의 굳은 맹세로 지내오던 목소리 고운 여자(女子)는 「집 한 칸(間)도 없는 당신과는 살 수 없어요」 라고 일전(一錢)오리(五厘) 엽서(葉書) 한 장을 던지더니 남의 첩(妾)이 되었다. 그들은 달콤한 것만 핥아 가는 꿀벌과 같이 내 마음의 순진(純眞)과 정열(情熱)을 다투어 빨아 가고 물안개처럼 내 품에서 감돌다가는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 밤도 그 강변(江邊)에 그 물결이 노닐고 그 달이 밝다 하염없이 좀먹혀 꺼풀만 남은 청춘(靑春)의 그림자를 길로 솟은 포플러 그늘이 가로 세로 비질을 할 뿐………… 1930.8

주석

패성(浿城) 패수(浿水, 대동강)의 성이라는 뜻으로 평양을 달리 이르는 이름.

북망산(北邙山) 중국 낙양 북쪽의 산으로 무덤이 많았던 데서, 사람이 죽어 묻히는 곳·무덤을 뜻하는 말.

동혈(同穴) 같은 무덤에 함께 묻힌다는 뜻으로, 죽어서까지 함께하기를 약속하는 부부의 굳은 언약을 이르는 말.

일전(一錢)오리(五厘) 당시의 화폐 단위. 일 전 오 리는 매우 적은 액수로, 값싼 엽서 한 장을 가리킴.

심상·해설

은하수 같은 달빛이 쏟아지는 여름밤 한강 위, 보트에서 속삭이던 옛사랑의 추억이 모두 배신과 죽음으로 스러지고, 껍데기만 남은 청춘의 그림자를 포플러 그늘이 쓸어 가는 쓸쓸한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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