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나의 강산이여
높은 곳에 올라 이 땅을 굽어 보니
큰 봉우리와 작은 묏부리의 어여쁨이여.
아지랑이 속으로 시선(視線)이 녹아드는 곳까지
오똑오똑 솟았다가는 굽이쳐 달리는 그 산(山)줄기
네 품에 안겨 뒹굴고 싶도록 아름답구나.
소나무 감송감송 목멱(木覓)의 등어리는
젖 물고 어루만지던 어머니의 허리와 같고
삼각산(三角山)은 적(敵)의 앞에 뽑아든 칼끝처럼
한번만 찌르면 먹장구름 쏟아질듯이
아직도 네 기상(氣象)이 늠름(凜凜)하구나.
에워싼 것이 바다로되 물결이 성내지 않고
샘과 시내로 가늘게 수(繡) 놓았건만
그 물이 맑고 그 바다 푸르러서,
한모금 마시면 한백년(限百年)이나 수(壽)를 할듯
퐁퐁퐁 솟아서는 넘쳐넘쳐 흐르는구나.
할아버지 주무시는 저 산기슭에
할미꽃이 졸고 뻐꾹새는 울어예네
사랑하는 그대여, 당신도 돌아만 가면
저 언덕 위에 편안히 묻어 드리고
그 발치에 나도 누워 깊은 설움 잊으오리다.
바가지 쪽 걸머지고 집 떠난 형제(兄弟),
거칠은 벌판에 강냉이 이삭을 줍는 자매(姉妹)여
부디부디 백골(白骨)이나마 이 흙속에 돌아와 묻히소서,
오오 바라다볼수록 아름다운 나의 강산이여!
주석
묏부리 산의 봉우리. '뫼(산)'와 '부리(끝)'가 합쳐진 옛말.
목멱(木覓) 서울 남산(南山)의 옛 이름. 목멱산이라 불렸다.
감송감송 풀이나 나무 따위가 드문드문 성기게 나 있는 모양.
삼각산(三角山) 서울 북쪽 북한산의 옛 이름. 세 봉우리가 솟아 있어 붙은 이름이다.
울어예네 울며 간다, 울면서 지나간다는 뜻. '예다'는 '가다'의 옛말.
바가지 쪽 걸머지고 집 떠난 형제 먹고살 길을 찾아 바가지 하나 들고 고향과 나라를 떠난 유랑민, 곧 만주 등지로 떠난 동포를 가리킨다.
심상·해설
높은 곳에서 굽어본 산줄기와 맑은 강물이 어머니의 품처럼 정답고, 떠도는 동포들이 죽어서나마 이 흙에 돌아와 묻히기를 비는, 국토 사랑이 가득한 풍경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