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머리말씀
나는 쓰기를 위해서 시(詩)를 써 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시인(詩人)이 되려는 생각도 해 보지 아니하였습니다. 다만 닫다가 미칠 듯이 파도(波濤)치는 정열(情熱)에 마음이 부대끼면 죄수(罪囚)가 손톱 끝으로 감방(監房)의 벽을 긁어 낙서(落書)하듯 한 것이 그럭저럭 근백수(近百首)나 되기에 한곳에 묶어보다가 이 보잘것없는 시가집(詩歌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가(詩歌)에 관한 이론(理論)이나 예투(例套)의 겸사(謙辭)는 늘어놓지 않습니다마는 막상 책상(冊床) 머리에 어중이떠중이 모인 것들을 쓰다듬어 보자니 이목(耳目)이 반듯한 놈은 거의 한 수(首)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병신(病身)자식이기 때문에 차마 버리기 어렵고 솔직(率直)한 내 마음의 결정(結晶)인지라 지구(知舊)에게 하소연이나 해보고 싶은 서글픈 충동(衝動)으로 누더기를 기워서 조각보를 만들어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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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三十)이면 선다(立)는데 나는 아직 배밀이도 하지 못합니다. 부질없는 번뇌로 마음의 방황으로 머리 둘 곳을 모르다가 고개를 쳐드니 어느덧 내 몸이 삼십(三十)의 마루터기 위에 섰습니다. 걸어온 길바닥에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못한 채 나이만 들었으니 하염없게 생명(生命)이 좀먹힌 생각을 할 때마다 몸서리를 치는 자아(自我)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제법 걸음발을 타게 되는 날까지 내 정감(情感)의 파동(波動)은 이따위 변변하지 못한 기록(記錄)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리라고 스스로 믿고 기다립니다.
일구삼이년 구월(一九三二年九月) 가배절(嘉俳節) 이튿날
당진(唐津) 향제(鄕第)에서 심 훈(沈 熏)
주석
머리말씀 심훈이 자신의 시가집 『심훈 시가집』 앞에 붙인 서문(序文). 시를 쓰게 된 동기와 심정을 밝힌 글이다.
근백수(近百首) 백 수에 가까운 수. '수(首)'는 시를 세는 단위로, 시 백 편 가까이를 뜻한다.
예투(例套)의 겸사(謙辭) 으레 하기 마련인 형식적인 겸손의 말. 서문에 흔히 붙이는 상투적인 겸양의 표현을 이른다.
지구(知舊) 오래전부터 사귀어 온 친구. 옛 벗.
삼십(三十)이면 선다(立) 『논어』의 '삼십이립(三十而立)', 곧 서른 살이면 뜻이 확고히 선다는 공자의 말에서 온 표현이다.
배밀이 젖먹이가 배를 바닥에 대고 기는 짓. 아직 걷기는커녕 기지도 못하는 미숙한 상태를 비유한다.
가배절(嘉俳節) 한가위, 곧 추석. 음력 팔월 보름의 명절이다.
당진(唐津) 향제(鄕第) 충청남도 당진에 있던 심훈의 시골집. '향제'는 고향 집을 뜻한다. 그는 이곳 필경사(筆耕舍)에서 『상록수』 등을 썼다.
심상·해설
시인이 되려던 것이 아니라 끓는 정열에 못 이겨 감방 벽을 긁듯 써 내려간 시들을 누더기 조각보처럼 엮으며, 서른에 이른 자신을 담담히 돌아보는 서문의 목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