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고루의 삼경
눈이 쌓이고 쌓여
객창(客窓)을 길로 덮고
몽고(蒙古)바람 씽씽 불어
왈각달각 잠 못 드는데
북이 운다 종(鍾)이 운다.
대륙(大陸)의 도시(都市), 북경(北京)의 겨울 밤에―
화로(火爐)에 매탄(煤炭)도 꺼지고
벽(壁)에는 성에가 슬어
얼음장 같은 침상 위에
새우처럼 오그린 몸이
북소리 종(鍾)소리에 부들부들 떨린다.
지구(地球)의 맨 밑바닥에 동그마니 앉은 듯
마음조차 고독(孤獨)에 덜덜덜 떨린다.
거리에 땡그렁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호콩장사도 인제는 얼어 죽었나 보다.
입술을 꼭꼭 깨물고 이 한밤을 새우면
집에서 편지나 올까? 돈이나 올까?
만터우 한 조각 얻어먹고 긴 밤을 떠는데
고루(鼓樓)에 북이 운다 종(鍾)이 운다
(침상은 나무침상(寢床), 만터우는 밀가루떡)
1919. 12. 12. 북경(北京)에서
주석
고루(鼓樓)의 삼경(三更) '고루'는 큰 북과 종을 매달아 시각을 알리던 누각(베이징의 고루가 유명하다). '삼경'은 밤 11시부터 새벽 1시 무렵의 한밤중을 이른다.
매탄(煤炭) 석탄. 본문 표기 '메춴'은 중국어 발음(méitàn)을 옮긴 것으로 보이며, 화로에 때던 연료다.
만터우(饅頭) 소를 넣지 않고 밀가루를 발효시켜 찐 중국식 빵(만두). 시인이 직접 '밀가루떡'이라 풀이를 달았다.
호콩 땅콩을 이르는 말. '호콩장사'는 거리에서 땅콩을 파는 장수다.
성에 기온이 낮을 때 유리나 벽에 수증기가 얼어붙어 생기는 얇은 얼음. 본문의 '성애'는 같은 말이다.
심상·해설
눈보라 치는 베이징의 한밤, 꺼진 화로와 성에 낀 벽 사이에서 새우처럼 웅크린 망명객이 떨고 있다. 고루의 북소리 종소리만 울리는 이국의 추운 객창에서, 집 소식을 기다리는 사무친 고독과 향수가 뼛속까지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