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가배절
1930년대

가배절

심훈 · 1930년대
팔이 곱지 않았으니 더덩실 춤을 못 추며 다리 못 펴 병신(病身) 아니니 가로 세로 뛰진들 못하랴 벼 이삭은 고개 숙여 벌판에 금(金)물결이 일고 달빛은 초가(草家)집 용마루를 어루만지는 이 밤에― 뒷동산에 솔잎 따서 송편을 찌고 아랫목에 신청주(新淸酒) 익어선 밥풀이 동동 내 고향(故鄕)의 추석(秋夕)도 그 옛날엔 풍성(豊盛)했다네 비렁뱅이도 한가위엔 배를 두드렸다네. 기쁨에 넘쳐 동네방네 모여드는 그날이 오면 기저귀로 고깔 쓰고 무둥 서지 않으리 쓰레받기로 꽹과리 치며 미쳐나지 않으리 오오 명절(名節)이 그립구나! 단 하루의 경절(慶節)이 가지고 싶구나! 1929. 9. 17

주석

가배절(嘉俳節) 추석, 한가위를 이르는 말. '가배(嘉俳)'는 신라 때부터 전하는 한가위의 옛 이름이다.

신청주(新淸酒) 새로 갓 빚어 익힌 맑은 술(청주).

무둥 서지 '무둥'은 신명 나게 덩실덩실 나서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보인다. 흥에 겨워 춤판에 나선다는 뜻.

경절(慶節) 경사스러운 날, 기쁜 명절.

심상·해설

황금빛 벼 물결과 달빛 어린 초가지붕 아래, 송편과 갓 익은 술로 풍성하던 옛 한가위가 그립다. 거지조차 배불렀다던 그 흥겨운 명절을 단 하루만이라도 되찾고 싶은 간절함이 사무친다.

심훈의 다른 작품

비슷한 심상의 다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