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첫 눈
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립니다.
삼승버선 엎어 신고 사뿟사뿟 내려 앉습니다.
논과 들과 초가집 용마루우에
배꽃처럼 흩어져 송이송이 내려 앉습니다.
조각조각 흩날리는 눈의 날개는
내 마음을 고이 고이 덮어 줍니다.
소복 입은 아가씨 처럼 치맛자락 벌이고
구석구석 자리를 펴고 들어앉습니다.
그 눈이 녹습니다, 녹아 내립니다.
남몰래 짓는 눈물이 속으로 흘러들듯
내 마음이 뜨거워 그 눈이 녹습니다.
추녀 끝에, 내 가슴 속에, 줄줄이 흘러 내립니다.
주석
삼승버선 삼승(三升)베, 곧 올이 굵고 성근 무명으로 지은 버선. 여기서는 흰 눈송이가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의 비유.
용마루 지붕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가로로 마루지게 솟은 부분.
소복(素服) 흰옷. 본디 상복(喪服)이나 여기서는 하얗게 쌓이는 눈을 흰옷 입은 여인에 빗댄 것.
심상·해설
삼승버선 신은 듯 사뿐사뿐 논과 들과 초가지붕에 배꽃처럼 내려앉아 마음을 덮어 주던 첫눈이, 뜨거운 가슴에 닿아 추녀 끝으로 눈물처럼 줄줄이 녹아내리는 정경이 곱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