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어린이날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비가 내립니다.
여러분의 행렬에 먼지 일지 말라고
실비 내려 보슬보슬 길바닥을 축여 줍니다.
비바람 속에서 자라난 이 땅의 자손들이라,
일 년의 한번 나들이에도 옷깃이 젖습니다그려.
여러분은 어머님께서 새 옷감을 매만지실 때
물을 뿜어 주름살 펴는 것을 보셨겠지요?
그것처럼 몇 번만 더 빗발이 뿌리고 지나만 가면
이 강산의 주름살도 비단같이 펴진답니다.
시들은 풀잎만 얼크러진 벌판에도 봄이 오면은
하늘로 뻗어 오르는 파란 싹을 보셨겠지요?
당신네 팔다리에도 그 싹처럼 물이 올라서
지둥치듯 비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말라고 비가 옵니다.
높이 든 깃발이 그 비에 젖습니다.
1929.5.5
주석
실비 실처럼 가늘게 내리는 비, 가랑비.
강산의 주름살 고생과 시련으로 골이 패고 찌든 나라(강산)의 모습을 사람의 주름살에 빗댄 표현. 비가 그 주름을 비단처럼 펴 주리라는 희망을 담았다.
지둥치듯 '기둥(지둥)이 흔들려 무너질 듯'이라는 뜻으로,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모양을 이른다.
높이 든 깃발 어린이날 행렬에서 치켜든 깃발. 비에 젖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건 희망과 미래의 상징이다.
심상·해설
어린이날마다 내리는 보슬비를, 행렬의 먼지를 잠재우고 찌든 강산의 주름살을 비단처럼 펴 주는 손길로 그리며,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말라고 아이들의 팔다리에 물오르게 하는 봄비 속 젖은 깃발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