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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기리는 노래
1930년대

빛을 기리는 노래

윤곤강 · 1930년대
달도 별도 없는 밤에 홀로 빈 뜰에 서성대 밤의 ‘마아야’ 내 손목을 잡는다 잠잣거라 가슴아 나는 미쳤어라 지금이 어느 때라 나는 빛을 찾는가 어둠의 우리 속에 둘러싸이어 나는야 굶은 이리 되었어라 찬 서리 내리어 내리어 촉촉히 젖어 서린 나뭇잎 밟고 쉴 데도 없는 몸 어찌 하리까 물 가에로나 가볼까 물 가에 가서 넓은 물 위에 배 띄워 타고 배 띄워 타고 끝 모를 바다로나 가볼까 뫼에로나 가볼까 가볼까 뫼에 가서 觀音[관음]님께 무릎 꿇고 빌까 觀音[관음]님은 이 내 속 아시오리 설운 마음 술집에나 찾아 갈까 술집 가시내 정다운 양 내 손목 잡으면 가신 임 다시 본 듯 품고 노닐까 아서라 아서라 그리 말아라 벼락이 내려치는 無門地獄[무문지옥]에 떨어지리 가신 임 여의었은들 믿음이야 그치리이까 구슬이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그 구슬 꾀은 끈이야 끊이리이까 아으 속절없어라 내 몸은 미친 바람에 지는 꽃잎답게 덧없이 예는 길 애달파라 아니어라 아니어라 차라리 나는 돌아가리로다 미더운 봉당자리에 반듯이 누워 찬 이불로 이 몸 덮어 누워 사향각시 품은 듯 잠이나 자리라 새벽이라 기름때 묻은 베갯맡에 식은 눈물이 젖어 배어 相思戀情[상사연정]도 애닲게 눈을 뜨면 짐짓 듣는 먼 절의 쇠북소리 놀라 깨어 자리 차고 일어 문 박차 열고 뜰로 나가면 반가와라 동녘 하늘에 번히 틔는 빛 아으 이제야 나는 빛을 안으리로다 빛아, 빛아 돋으시라 새 햇빛 밝아오면 온 누리 너울너울 춤추고 내사 밝은 빛이 탐나 눈 비비며 눈 비비며 쫓아가리로다 빛아, 밝고 빛나는 아침 햇빛아 시들은 언덕에 새싹 돋아나고 마른 나뭇가지 위에 꾀꼬리소리 들리고 골짜기마다 옹달샘이 솟아나고 얼굴 들어 고개 숙인 열매나 따 먹고 너풀대는 푸른 나무 그늘 아래 사오리라 빛을 안고 밝은 햇빛 안아 사오리라

주석

마아야(마야) 불교에서 '환(幻)·헛것'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마야(māyā). 빛 없는 밤에 시인을 사로잡는 어둠의 환영을 의인화하였다.

관음(觀音)님 관세음보살. 중생의 괴로움을 살펴 구제한다는 자비의 보살. 의지할 데 없는 마음이 마지막으로 빌고자 하는 대상이다.

무문지옥(無門地獄) 들어가면 빠져나올 문이 없는 지옥, 곧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가까운 표현. 끊임없는 고통이 이어지는 곳을 이른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그 끈이야 끊어지랴 고려가요 「정석가(鄭石歌)」와 「서경별곡(西京別曲)」에 거듭 나오는 구절을 빌려 온 것. 구슬은 깨져도 꿴 끈은 끊어지지 않듯, 임을 여의어도 믿음(사랑)만은 변치 않는다는 절개를 노래한다.

봉당(封堂) 자리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마루를 놓지 않은 흙바닥. 가난하고 소박한 잠자리를 가리킨다. 고려가요 「만전춘별사」의 정조를 떠올리게 한다.

사향각시 사향 냄새가 나는 고운 각시, 곧 향기로운 임. 옛 노래에서 그리운 임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예는 길 '예다'는 '가다'의 옛말. '가는 길'을 뜻한다.

심상·해설

달도 별도 없는 어둠 속을 굶주린 이리처럼 헤매며 물가와 산, 술집을 떠돌던 이가, 임을 여의어도 끊기지 않는 믿음을 다잡고 잠을 청한다. 새벽 먼 절의 쇠북 소리에 깨어 문을 박차고 나가니 동녘에 환히 빛이 트이고, 새싹과 옹달샘이 솟는 광명의 세계를 끌어안는다. 고려가요의 가락을 빌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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