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1910년대
하늘
감이 붉은 시골 가을이
아득히 푸른 하늘에 놀 갈은
미결사의 가을 해가 밤보다도 길다.
갔다가 오고, 왔다가 가고,
한간 좁은 방 벽은 두터워,
높은 들창 가에
하늘은 어린애처럼 찰락어리는 바다.
나의 생각하고 궁리하던 이것저것을,
다 너의 물결 위에 실어,
구름이 흐르는 곳으로 띄워볼까!
동해바다 가에 적은 촌은,
어머니가 있는 내 고향이고,
한강 물이 숭얼대는
영등포 붉은 언덕은,
목숨을 바쳤던 나의 전장.
오늘도 연기는
구름보다 높고,
누구이고 청년이 몇,
너무나 좁은 하늘을
넓은 희망의 눈동자 속 깊이
호수처럼 담으리라.
벌리는 팔이 아무리 좁아도,
오오! 하늘보다 너른 나의 바다.
주석
미결사 미결수가 갇혀 재판을 기다리는 감방. '미결감(未決監)'.
영등포 서울 한강 남쪽의 공장 지대. 노동운동의 현장으로, '나의 전장'은 그곳의 투쟁을 가리킴.
심상·해설
감 익는 가을, 미결수의 좁은 감방 들창으로 보이는 한 조각 하늘을 화자는 찰랑이는 바다로 바꾸어 품는다. 갇힌 몸의 옹색함과 하늘보다 넓은 희망의 대비가 가슴 시리게 빛난다.
낭독 지시
Style: 감방의 답답함을 낮게 누르다가 하늘·바다 대목에서 트이듯 펴고, 끝 두 행은 벅차게 끌어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