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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풍경
1930년대

감상 풍경

김기림 · 1930년대
순아 이 들이 너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는 말을 차마 이 들의 귀에 들려 주지 말아라. 네 눈을 즐겁게 못하는 슬픈 벗 '포풀라'의 흐릿한 몸짓은 오른도 방천에서 떨고 있다. 가느다란 탄식처럼...... 아침의 정적을 싸고 있는 무거운 안개 속에서 그날 너의 노래는 시냇물을 비웃으며 조롱하였다. 소들이 마을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음메- 음메- 울던 저녁에 너는 나물 캐던 바구니를 옆에 끼고서 푸른 보리밭 사이 오솔길을 배아미처럼 걸어 오더라. 기차 소리가 죽어 버린 뒤에 검은 들 위에서 오늘 나는 삐죽한 광이 끝으로 두터운 안개빨을 함부로 찢어 준다. 이윽고 흰 배아미처럼 적막하게 나는 돌아갈게다.

주석

배아미 '뱀'의 방언 또는 옛 표기. 보리밭 사잇길을 구불구불 걷는 모습을 비유함.

광이 '괭이'의 옛 표기. 땅을 파거나 안개를 헤치는 데 쓰는 농기구로 그렸음.

안개빨 안개의 결, 안개 자락. '빨'은 비·안개 따위의 줄기를 이르는 말.

심상·해설

안개에 잠긴 들녘에서 보리밭 사잇길을 뱀처럼 걸어오던 순이를 떠올리며, 오늘은 홀로 괭이 끝으로 안개를 헤치다 흰 뱀처럼 적막히 돌아서는 고향의 쓸쓸한 풍경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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